한국인에게 더 익숙한 짜장면

짜장면의 '면(麵)'은 '국수 면'으로, 여기서 떠올리는 면의 형상은 길고 둥근 모양이다. 그런데 면(麵)이라는 글자를 분석해 보면 '평평하고 널찍하다'는 뜻의 '면(面)'이 들어가 있다.

▲ 어디서나 흔히 즐길 수 있는 간짜장

중국에서 면(麵)은 원래 길쭉한 가락 형태가 아니라 지금의 전(煎)이나 병(餠)처럼 널찍한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면은 한나라 때 밀가루를 반죽해 병(餠)처럼 만들어 끓여 먹는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수제비, 국수 등을 통칭해 면이라고 한다. 오늘날 가락 형태의 국수는 당나라 때 처음 등장해 보급되었다.

짜장면의 장(醬)은 '젓갈'의 의미로 한국의 장 담그는 법과 비슷하다. 장을 기름에 튀겨 양념한 뒤 면과 같이 먹는 게 바로 짜장면이다. 옛날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을 많이 넣었다고 하는데 염분 농도가 보통 18~20% 정도로 갓 담근 장은 짜고 써서 먹기가 어렵다. 숙성시간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보통 중국에서 좋은 장은 3년 이상의 숙성을 요한다.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5년 혹은 7년 이상 숙성한 것도 있을 정도다.

▲ 가장 대중적인 음식인 짜장면

이렇게 오랜 시간 숙성된 장은 산화작용을 통해 색깔이 짙게 변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이 장을 중국에서 수입했으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장을 수입할 수 없게되자 이때부터 화교들이 직접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에 갓 담근 장의 색깔이 누런빛을 띤 탓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여서 색소를 첨가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싼값의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되도록 장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색소 첨가가 늘어났다. 한국의 짜장면이 지금처럼 까맣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1905년 일본의 아지노모도(미원)라는 인공조미료가 우리 밥상에 오르기 전 짜장면의 조리 방법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고기와 장 그리고 약간의 파와 생강을 기름에 볶아 양념하고 면 위에 개인적 취향이나 계절 변화에 따라 채소 등과 함께 비벼 먹는 정도였다. 이것도 서민들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때론 장을 그냥 기름에 볶아 고기 없이 양념하기도 했다. 예전 한국에서 판매되던 짜장면도 이런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 해물을 넣어 짜장과 면을 함께 볶는 쟁반볶음짜장

고기에 채소를 듬뿍 넣고 장과 같이 볶아 만든 것을 간짜장이라고 했는데 미원이 생겨나고 짜장면을 대중화하기 위해 이 간짜장에 물을 넣고 미원으로 맛을 낸 후 전분을 풀어 넣은 것이 흔히 말하는 '옛날짜장'으로 바로 오늘날의 짜장면이 된 것이다.

짜장면도 한때는 귀한 음식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은 면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밀 농사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아서 밀가루 자체가 귀했고 짜장면의 장이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 그 시절 물류상황을 보면 수입품의 가격이 저렴할 리 없었으며,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량의 식용유가 필요한데 당시에는 식용유 자체가 귀한 식자재였다. 따라서 과거에 짜장면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했든 오늘날만큼 대중화되고 서민적인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이유로 개항 때 부두노동자들이 쉽게 짜장면으로 한 끼를 때웠을 거라는 얘기는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노령의 화교들은 말한다. 소위 화이트칼라층도 짜장면을 날마다 먹기에는 가격 면에서 부담스러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밀가루를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로 보고 있어서 그 후 '옛날짜장'이라는 짜장면이 한국 짜장의 대세가 된 것이다.

▲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은 관광객들이 짜장면 거리 포토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광객들은 보통 짜장면을 처음 팔기 시작한 곳이 '공화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옛 공화춘 집안의 종부인 우해덕원 여사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힌 바 있다. 짜장면은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 어느 작은 식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로 전해져 올 뿐이다.

좋은 짜장면은 일단 화학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고 장 내음이 향긋하고 면발이 탱글탱글해야 한다. 원래 중국에서 짜장면은 겨울에 따뜻한 육수를 부어 비벼 먹지만 여름에는 차가운 우물물에 국수를 차갑게 한 다음 시원하게 비벼 먹는 음식이었다.

이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문할 때면 짜장면에 깃든 당시의 시대 상황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 서학보 대표가 지난해 11월 27일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 '본토'에서
인천대 중국어학과 학생들에게 화교문화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글에 도움을 준 서학보(徐學寶, 56) 대표는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중국음식점 '만다복(萬多福)'과 '본토(本土)'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교 문화를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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