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조마삭으로 말을 훈련시키다보면 회원들이 오신다. 각설탕과 당근을 들고 마방을 먼저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30여분 걸리는 원당의 목장까지 말을 만나고 말과 함께 승마를 즐기러 오신 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말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제 있었던 사건사고(?)를 이야기 한다.
“글쎄, 그 착한 우배(말 이름)가 어제 사람을 낙마시켰대. 원당 목장 앞에서 사람들 말 태우고 사진 찍어 주는 노인네 있잖아? 치료비에 합의금에, 그 양반 2년간 길거리에서 생고생한 게 다 헛일이 되었다는군. 어제 날씨가 더웠는데 파리가 많아서 우배가 짜증이 잔뜩 났나봐.”
한쪽 다리를 절지만, 정이 많이 들어서 기르던 ‘우배’라는 말이 사고를 친 것이다. 동네 노인분이 우배를 데리고 관광객에게 말과 사진 찍는 일을 하던 중에 일어난 사고. 큰 사고는 아니겠지만, 우배와 노인네에게는 큰 사고다.
“아침부터 사고소식 기분도 좋지 않은데, 외승(말 타고 승마장 밖으로 나가는 것)이나 가지.”
한 회원의 제안에 강석태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나는 내 말이 없으니 원장님이나 자마 회원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꽃님이’를 탄다. 꽃님이는 이름이 예쁘다. 하지만 승마장에서 이름 예쁜 말들은 성격이 포악한 경우가 많다. 강한 말에 강한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기승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만만하고 순해 보이는 이름을 말에게 붙인다. 만약 지금 기승하고 있는 말 이름이 ‘예쁜이’, ‘순둥이’, ‘곱단이’라면? 살짝 긴장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말은 한양골프장 뒤로 난 비포장도로에 올라선다. 꽃님이가 선두. 차분하게 평보를 한다. 세상이 흔들흔들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난다. 사업 망한 한량이 때 아닌 호사다. 나뭇가지에 새로 돋는 이파리들이 얼굴 근처에 머물다 뒤로 사라진다. 말을 타면 얼굴 위치가 땅에서 2m 70cm~2m 80cm 가량 되므로 늘 정면을 잘 안 보면 나뭇가지에 맞는 수가 있다. 길 끝에 주막집이 보인다. 날씨가 따듯해지는 주말 오전이니 사람들이 벌써 평상에 나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다.
“어? 이 말이 왜 이러지?”
꽃님이가 갑자기 구보로 질주한다. 시속 36~45km. 뒤따르던 회원도 놀라셨다. 하지만 둘 다 구보를 잘 하니 별 무리 없이 말을 달린다. 주변 경치가 휙휙 지나간다. 말을 타고 구보를 하면 말은 위아래로 펄쩍거리고 바람은 볼을 스친다. 자동차 체감 속도로는 140~150km/h 정도. 말은 그렇게 잠깐 질주 하더니 갑자기 평보를 한다. 급격한 평온. ‘어, 뭐지?’
어리둥절 하는 사이 또 다시 말이 뛴다. 주변을 보니 야외 삼겹살 식당이다. 마당에서 삼겹살을 굽던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 뜬 채 우리를 바라본다. 어떤 손님은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한다. 야외 삼겹살집을 지나자 말은 또 다시 속도를 줄이고 흔들흔들 평보를 한다. 내가 이상해 하자 뒤에 오시던 회원분이 내게 설명을 해주신다.
“김 대장, 그 꽃님이가 박 사장 말이잖아? 그 양반이 평소 외승을 나오면 이렇게 사람 많은 식당 앞에서 구보로 뽐낸 거야. 그러니 야외 식당 앞에만 가면 꽃님이가 그렇게 달리는 거고.”
‘아하, 말 주인의 습관에 따라 말은 평소 하던 대로 한 것뿐이구나.’ 그냥 말 위에만 앉아 있어도 말이 알아서 시골길을 달리거나 걷거나 하면서 또각또각 길을 간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고 좋은 분들이었다. 이럴 때 나는 간혹 후회한다. 괜히 승마대중화 한다고, 말 사업한다고 번잡스럽게 살았다. 말과 함께 타박타박 고요히 길이나 갈 것을. 말을 타고 길 위에 있으면, 세상이 가고, 시간이 가고, 인생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