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렴으로 입원 중인 얼룩말 망아지.
미국에서 사진이 왔다. 폐렴에 걸린 귀여운 얼룩말 망아지다. 내게 승마를 배운 뒤 말 전문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건국대학교에서 수의학과를 졸업해 현재 미국에서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제자가 보냈다. 요즘은 미국의 말 출산 시즌이다. 아마 잠도 잘 못자고 죽기로 일하는 모양이다. 그녀가 워낙 말을 좋아하는데 말은 주로 한밤중이나 새벽에 망아지를 낳기 때문이다. 망아지가 빨리 낫기를 기원하며 건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했다. 하지만 거의 평생 몸을 써서 일했다. 1997년 IMF가 오기 전까지는 주로 공장자동화 시스템 설계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했지만, 그때는 젊었다. 내 몸은 새로 조립된 기계처럼 잘 움직였다. 어렴풋이 아버님과 삼촌들의 혈압이 조금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40살이 넘고 50살이 되어서 신체검사를 할 일이 많이 생겼다. 나는 171cm에 77~78kg인 비만형이다. 나이가 들어 ‘기초대사량’이 줄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처럼 먹으면 잉여 칼로리가 곧장 비만으로 연결된다고 당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인턴이던 승마제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 내 의문을 풀어주었다. 실은 나는 젊은이들보다 더 먹고 마셨다.

학교에 수업을 나가려면 매년 초에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승마 일을 하면서 40대 후반, 마방을 치우고 밭에 마분 거름을 주는 등 노동의 강도가 세지면서 금방 배에 복근이 생겼다. 농사일로 수레 등을 밀고 당기고 언덕을 오르내리는 일은 주로 허리와 하반신을 쓰지만 팔과 어깨도 만만치 않게 쓰는 종합 유산소 운동이다. 나는 당시 40대 몸짱이라며 은근 자랑했었다.

50대 초가 되어 잠시 사무일과 홍보 계약을 주로 하게 되었다. 신체검사를 하니 혈압이 높게 나왔다. 수축기 139에 이완기 90이 나왔다. 뭐지? 난 평생 건강 걱정 안하고 살았고, 당뇨도 없었다. 그때 120에 90이 넘으면 고혈압 전 단계, 140에 100이 넘으면 1차 고혈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석 달간 술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혈압을 재 보았다. 145에 99가 나왔다. 이런, 이게 뭐지?

하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금방 잊고 말았다.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장 말을 조련하고, 마방을 치우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매일 말과 함께 수십 km를 걷고, 마분을 치우며 땀을 흘렸다. 특히 전체 마방을 다 치우는 화요일에는 겨울에도 웃통을 벗고 일할 정도로 땀을 흘렸다. 몇 번 신체검사를 했지만 혈압은 지적받을 정도가 아니었다.

▲ 재활승마 봉사 중인 필자

올 들어 하고 있는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 행성은 성실하고 노력하고 끈기 있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잠시 일을 멈추기로 했다. 더 이상 베끼면서 욕하는 이들을 위해 어리석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몇 가지 일을 정리하다보니 두어 달이 금방 지났다. 백수가 제일 바쁘다. 그간 나는 노동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다시 신체검사를 할 일이 생겼다.

전자식 자동 혈압계로 혈압을 재니, 146에 110이다. 간호사가 ‘이건 상당히 높은 것이에요.’라며 친절하게 지적해 준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다시 잰다. 두 번째엔 150에 119다. 당황하니 더 높아진다. 한 10번쯤 혈압을 쟀다. 열심히 혈압을 재니 지나가던 간호사가 “파이팅”이라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145에 100을 마지막으로 혈압은 요지부동이었다.

혈압이 왜 갑자기 올랐을까? 올해 신년 결심은 라면 끊기와 봉지커피 끊기였고, 나는 단호하게 실천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술을 줄이거나 식사조절은 혈압 낮추기에 별로 효과가 없었다. 답은 운동이나 노동이다. 생각해보니 일을 멈추고 몸 쓰기를 안 한   두 달 가까이 된다. 나는 그날 저녁부터 당장 운동에 돌입했다.

매일 아침 트레드 밀에 올라 3~4km를 빠른 속도로 걷는다.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살짝 배일 정도. 내 나이에 더 무리하면 관절이 나빠질 수 있다는 아내의 충고를 따른다. 일주일 정도하고 하루 이틀은 속도를 더 높였다. 1~2주일 걷기운동하고 몸에 큰 변화가 올 리는 없다. 다리가 뻐근하고 괜히 기분만 상쾌하다. 저녁마다 맥주 한 캔은 멈추지 않았다.

어제 다시 혈압을 쟀다. 135에 95. 어? 이것 봐라, 들어가자마자 잰 것이니, 한 5분쯤 차분하게 앉아 다시 재본다. 128에 88이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운동 효과에 대한 이야기다. 1~2주일 걷기만 한 것으로도 혈압이 이렇게 안정된다. 그러니 격렬하게 승마를 한다면 얼마나 큰 효과를 얻을 것인가? 혈압이 걱정이라고? 나가서 걸어라. 아니면 말과 함께 대지를 박차고 뛰어라. 중년 건강은 운동이 답이다. 그동안 중년의 내가 건강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것은 오로지 승마의 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약 한 알도 먹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