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사이로 말들이 번갈아 산통이 난다. 관리사가 바뀐 뒤로 생긴 일들이다. 그러나 새로 온 관리사가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관리사의 책임이라고 하기는 무리다. 실제로 말들이 연이어 산통에 걸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산통은 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다.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겨울철이니 사료나 건초가 상할 위험은 적다. 쥐들에 대한 방제도 꼼꼼하게 했다. 그러니 적어도 먹이 탓은 아니다. 장마철에는 사료가 상하는 것이 산통의 원인인 경우가 많고, 가을철에는 쥐 때문에 말들에게 일종의 중추신경 마비 같은 병이 올 수 있다. 커다란 말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은 보기에도 안쓰럽다. 수의사를 불러 폐마 시켜야 한다.
지금은 한겨울. 그렇다면 물을 의심해 본다.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 승마장은 난방이 만만치 않다. 또한 지하수를 뽑아 쓰는 탓에 급수 장치가 얼기도 한다. 혹한의 날씨로 마실 물이 얼어붙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들이 일일이 버킷에 물을 퍼서 나르는 중노동도 해야 한다. 그래도 금방 얼어붙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물의 관리가 소홀해진다.
영하 10~18도. 물이 금방 얼어붙어, 말 물통을 매일 씻지 못한다. 가끔은 말들이 물통에 마분을 싸놓기도 한다. 말은 물에 예민하다. 조금만 더러우면 물을 먹지 않는다. 몇 해 전, 마방마다 자동 급수장치를 해 놓은 마방에 말을 맡긴 적이 있다. 말들이 입술로 누르면 물이 자동 급수되는 장치다. 하지만 이 편리한 장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말들이 물을 마실 적마다 양치를 하고 마시는 것이 아니다. 입에 묻은 사료 부스러기, 건초 부스러기, 때론 마분이나 지푸라기까지 급수대에 들어간다. 이게 하루가 되기도 전에 부패한다. 암말들은 특히 예민하다. 물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도 급수대의 물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니 급수대 물은 더 빨리 썩는다.
당시 산통이 난 암말을 응급조치하고 자동 급수대를 보니 엉망이다. 물을 비워내고 걸레로 급수대 물받이를 닦으니 맙소사! 완전히 시궁창 냄새가 난다. 30개가 넘는 급수대 모두 엄청난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매일 급수대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더러운 급수대의 물먹기를 거부하는 말은 곧장 산통이 올 수 있다.
썩은 물을 마시면 산통이다. 만약 먹지 않으면 말 먹이를 장 속에서 부드럽게 불려 줄 윤활제가 없어 또 산통이다. 말의 입장에선 진퇴양난인 것이다. 매일 닦아 주면 되겠지만, 그건 운영자의 마음일 뿐 바쁜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해서 이후로도 자동 급수대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천하제일사료 말 담당 장익훈 부장님의 조언에 따르면, 겨울철에도 말이 마실 물은 섭씨 7도를 유지하라고 한다. 더럽거나 너무 차가우면 말들이 물을 먹기가 쉽지 않아 변이 딱딱해지고 산통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 밤사이 말 물통에 얼음이 두껍게 언다. 방목장의 급수탱크를 데우고 운동 후 즉시 급수하지 않으면 마방에서 오염이나 결빙 때문에 물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말 물통 하나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말 관리자가 어디 나뿐일까? 열악한 환경에 놓인 전국의 승마장 마필 관계자들은 오늘도 두텁게 얼은 물통의 얼음을 깨며,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