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하게 방목 중인 말
아직은 한겨울이다. 승마관련 종사자들에게 가장 힘든 나날들이다. 승마장 원장님들은 내방객이 없어 운영난을 겪고, 현장의 승마교관들도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싸우며 승마교육을 한다.

상대적으로 말들은 겨울에 많이 쉬게 된다. 게다가 원래 말들은 겨울에 활동성이 더 강하다. 털이 길어지고 힘이 차는 것이다. 아마 말이나 포식동물이나 겨울에 먹이사슬 전반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더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결과라고 추정해 본다.  

이때 가끔 말들은 산통(疝痛)에 걸린다. 이것은 말에게 치명적이다. 사망률이 80% 이상이다. 물론 조기에 발견하고 진통, 소화제를 주사하고 관장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생존율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일단 3~4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살리기 어렵다고들 한다. 대략 8~12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창자가 막히고 변을 보지 못하다 극심한 고통 속에 가스로 배가 부풀어 오르며 죽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이다. 안락사.

미국의 경우 동네마다 말을 검진치료 할 수 있는 수의사가 있어 개복 수술도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그런 전문치료를 마사회에서만 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용하기가 어렵다. 말 이송이나 수술 수속을 하다보면 말은 이미 죽는다.

물론 말 산통은 날씨가 따듯할 때 더 많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사료나 건초의 변질, 곰팡이, 쥐 등 먹이요인도 있고, 모래나 돌을 집어 먹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 밀기울이나 기타 힘내라고 준 부산물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말이 누웠다가 갑자기 일어서면서 장이 꼬여 생기는 경우도 있다.

어제 말 한필에 산통이 왔다. 나는 외부에 일을 보러 나가 있었다. 오후 4시경 전화가 왔다. ‘말이 산통증세가 있다.’ 즉시 승마장으로 복귀해 들어보니, 점심 까지 잘 먹은 말이 오후 2시경부터 앞발로 바닥을 긁으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시 진통, 소화 효과의 주사제를 놓고 말을 천천히 걷게 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절대로 억지로 말을 걷게 하지는 않고, 말이 편하도록 하고 복통이 가라앉도록 조치한다. 나라마다 조금 다르다.)

▲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말

이후 3시경에 두 번 소량의 변을 보았다고 한다. 산통은 말의 창자 움직이는‘꼬르륵’ 소리와 창자가 뚫려 변을 보는가? 로 상태를 가늠한다. 하지만 오후 4시경에도 땅에 눕거나 엎드리며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말은 죽은 듯 땅에 누워 가끔 버둥댄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니 코를 땅에 끌 듯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눕는다. 말의 코에 건초를 조금 대본다. 전혀 관심이 없다. 심각하다.

수의사에게 전화를 건다. 수의사는 다른 곳에서 검진중이라고 한다. “일요일 늦은 시간에다 먼 곳에 왕진 와 있어서….” 말 전문 수의사가 모자란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독일에서 승마와 말을 오랫동안 공부하신 선배님과 의논한다. “말 귀와 목, 어디에 땀이 더 많이 났지?”, “귀 뒤요”, “급체다. 지금 갈게.”

말귀 밑에 땀이 난 것은 창자가 막히거나 꼬인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말이 소변을 누지 못하는 것이다. 말은 신체 구조상 마분이 요도를 누르면 소변도 보지 못한다. 말은 소변 누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추어 힘을 주지만, 소변은 나오지 않는다. 말의 배에 귀를 대본다.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모든 장 활동이 멈춘 것이다. 오후 7시경, 우리는 말의 관장을 시작한다.

호스로 약간의 압력을 주며, 미지근한 물을 말 항문에 밀어 넣는다. 막힌 창자를 펴고, 딱딱하게 굳은 마분을 부드럽게 하려는 것이다. 주변은 이미 영하 9도. 선배님은 옷을 버리지 않기 위해 웃통을 벗고 작업한다. 호스를 빼자 물과 마분이 섞여 말 항문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묽어진 마분으로 주변을 온통 오염시킨다. 악취가 진동한다. 평소 마분은 냄새가 심하지 않지만, 이렇게 소화가 덜 된 마분은 엄청난 냄새다.

두 번 더 물로 관장한다. 그런 후 팔에 미끄러운 윤활제를 바르고 말의 항문에 손을 넣는다. 어깨까지 손이 들어간다. 평소 같으면 뒷발로 차고 난동을 부릴 말이지만, 본인이 아프고 이게 치료 과정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는 듯, 아니면 시원한지 그대로 견딘다. “아이고, 엄청나게 막혔네.” 손으로 마분을 긁어낸다. 내장을 막고 있던 마분이 쏟아져 나온다. “이걸 스스로 밀어낼 힘이 없으니 죽겠지.” 몇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한다. 웃통을 벗은 선배님은 추위에 떤다. 겨울밤은 깊어가고, 고요한 승마장에서는 말을 살리려는 사람이나 살려고 하는 말이나 필사적이다. 조용히 말에게 속삭인다. “힘내자.”     

이젠 말이 상당히 편안해 보인다. 말의 배에 귀를 대본다. “꼬르륵” 소리가 난다. 위험은 넘긴 것 같다. 말의 코에 건초를 조금 대본다. 즉시 먹겠다고 달려든다. 식욕이 되살아 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24시간은 굶겨야 한다. 이후 물에 불린 건초나 사료를 소량씩 투여해야 한다. 말이 소변을 시원하게 눈다. 일요일 저녁, 집에 도착하니 자정. 다음날 아침 6시에 마방으로 다시 간다. 잠시 말을 살펴보고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전 6시40분 현재 밤톨이. 일어나 있고 뱃속에는 꾸르륵 소화되는 소리. 건초에 맹렬한 식욕. 아직은 먹이 주면 안 됨. 외부 영하 10도 컨테이너 영하 8도, 다행히 살아난 것으로 추정. 오늘 오전 내 지켜 볼 예정.’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