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봉 산악 외승 중 휴식을 취하는 말
일요일 오전 비가 내린다. 11월 말에 내리는 비. 이제 올해의 마지막 비일 것이다. 내일은 눈이 내린다고 한다. 이런 날은 대부분의 승마장에 손님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의사표현도 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온다.

“오늘 비와도 승마할 수 있지요?”
“당연히 하지요. 폭우만 아니면 합니다. 염려마세요.”

“오늘 비 오는데 승마 못하지요?”
“네, 오늘은 승마하기 힘듭니다. 그냥 집에서 쉬세요.”

나는 한 입으로 두 가지 대답을 한다. 모두 전화 건 분의 마음에 따른 것이다. 전자는 어떻게든 승마를 하고 싶은 것이고, 후자는 비 오고 추우니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전자는 산악 외승을 예약하신 분이다. 내일 눈이 내리면 포천 국사봉의 눈은 내년 4월이나 되어야 녹을 것이다. 결국 올해 마지막 산악외승이다. 반드시 하고 싶으셨던 게다. 그분들은 비를 맞으며 우중승마를 하고, 빗속의 승마와 억새와 갈대가 흔들리는 대자연을 느끼셨을 것이다. 초겨울 비 내리는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직접 부친 파전과 막걸리, 그 또한 별미다. 운동 후 말을 잘 씻어주고 당근을 나누며, 정말 역동적인 주말을 보냈다.

▲ 군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승마인들

후자는 차가운 비를 맞으며 말 타기 싫었을 것이고, 감기가 걱정이었을 것이다. 따스한 방에서 뜨끈하게 등을 지지며, 비 오는 주말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겠지. 고치 속의 누에처럼 따듯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다 좋다. 모두 개인의 취향이고 선택이다. 나는 내 고객들의 취향을 어떻게든 존중한다.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박규희의 기타 소나티나(Guitar Sonatina)를 진공관에 건다. 이윽고 스피커가 나직이 기타소리를 뿜어내면, 오늘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승마인들과 함께 보낸 바쁜 하루를 돌아본다. 사람들의 미소가 좋다. 말들의 맑은 눈과 뚱하고, 심술 내고, 겁내는 표정이 좋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지금 말들은 새로 깐 대팻밥의 말끔한 향기를 맡으며, 두툼한 알팔파 건초더미와 맛난 사료 속에 코를 박고 무한히 행복할 것이다.

오늘 승마장을 찾아 말을 탔던 분들은 저녁상에 앉아 가족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멋졌는지, 즐거웠는지,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난 영웅 벨레로폰이 되어 행복할 것이다. 말을 타지 않은 사람들은 승마가 아닌 뭔가 보람된 시간을 보내며 가족과 즐거웠을 것이다.

나는 나이 들었다. 이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성 내거나 못마땅해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가 발을 구른다고 지구의 자전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나로 인하여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중승마를 하러 오셨던 이는 승마를 해서 행복하고, 방에서 따뜻한 하루를 보낸 사람은 또 승마를 안 해서 행복했길 바란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 해서 충분히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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