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활승마를 마친 서울시 뇌성마비복지회관 회원들.
가을비 내린 하루. 아주 작은 빗소리가 세상의 모든 소음을 압도한다. 안개비만 내려도, 세상은 비 오는 하루가 된다. 아침부터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하다. 안타깝지만 가을 정취를 느낄 여유 따위는 없다. 고독한 마부의 현실. 모든 승마장이 다 쉬는 월요일. 나는 뇌성마비 회관에서 오는 10명의 장애인들께 재활승마 체험을 해줘야 한다.

“제가 거절하면 다른 데 가서 재활승마 하실 곳 없죠?”, “네.” 책임자 분이 솔직하게 답을 해주셨고, 그래서 시작된 일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협조하는 곳이 있었다면, 나도 흔쾌히 하겠노라고 장담은 못했을 것이다. 재활승마가 끝나면 의정부초등학교로 승마수업 나갈 6두의 마필을 묶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기다렸지만 비는 그치지 않는다.

마침내 10명의 뇌성마비 장애인이 도착했다. 공허한 느티나무 숲은 특유의 어눌하고 쾌활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지난 봄 이미 만난 분들이라 더욱 반갑다.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원어민 영어를 듣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로 답을 준다. 대개는 그 정도로 우리의 언어소통은 충분하다. 나는 미리 언질을 준다.

"오늘은 아무도 없어요. 누가 뭐랄 사람도 없으니 천천히 편안하게 승마하시고, 숲 속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가세요. 이런 날은 파전에 막걸리인데, 오늘은 승마와 커피로 만족하자고요."

나의 어설픈 너스레에도 그분들은 즐겁게 웃어 주신다. 두어 번 만났으니 이젠 남이 아니다. 우리는 이 행성의 여행자들이고, 각자 일용할 상처를 지니고 있다. 그분들의 일그러진 미소나 육신은 내게도 익숙하다. 내 가슴 속 어두운 상흔도 그분들께 공명이 되었을까? 내게 너무 편하게 대해주시니, 나는 고맙다.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말을 탄다. 5두의 말 탄 장애인들의 웃음소리가 고적한 숲을 채운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들이 전세 낸 승마장이다. 나도 괜히 들떠 말이 많아진다. 하지만 안전이 제일, 신경은 칼날처럼 곤두선다. 아무리 잘해도 사고 한 번이면 모든 것은 수포다. 마지막 한 명의 장애인을 말에서 내려주기까지 한순간도 방심할 순 없다. 그것이 지난 15년간 장애인 재활승마를 하면서, 단 한건도 큰 사고가 없었던 이유다. 재활승마에 정성과 노력 말고 왕도가 있을 리 없다.

무사히 재활승마를 마치고, 사무실 컨테이너에 다 같이 둘러앉았다. ‘애마부인’ 같다느니 ‘기마 장군’ 같다느니 하는 장애인들의 만담홍소가 비좁은 컨테이너 밖으로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퍼져나간다. 오늘은 마음 놓고 웃어도 좋은 날이다.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다. 그때 한 장애인 영감님이, 알아듣기 어렵지만 분명한 어조로 회상하신다.  

"내가 어렸을 땐 부모님이 나 부끄럽다고 숨겼어. 장애인들은 대우도 못 받고 다들 창피하다고 쉬쉬했지. 지금은 너무 좋아졌어. 장애인을 숨기지 않고, 제대로 대우해 주고 돌봐주잖아. 난 지금 너무 행복해, 오늘처럼 승마도 하고…."

유년 시절, 가족들에 의해 숨겨진 자식으로 자랐다. 67년 동안 뒤틀린 뇌성마비 장애의 불편한 육신, 보호시설의 제한된 삶을 사신 영감님. 그냥 장애인임을 인정해 주고, 그에 맞는 처우를 해줘서 행복하다는, 정말 소박한 1947년생 장애인 영감님의 가슴 아픈 증언이다.

그래서 사지 멀쩡한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그 뇌성마비 노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정말 불행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면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상대적 불행?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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