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차가워져서 파리와 등에가 없다. 말들이 물리지 않아 괜찮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참관석에 모기향을 안 폈더니, 학부모님들이 모기에 많이 물리셨다. 9월 중에는 계속 모기향을 피워야겠다. 봉사단들이 중간에 잠시 쉬며 간식을 먹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가을 모기가 극성이다.
나는 재활승마수업에 승마 이외의 요소를 배제한다. 승마는 말 자체로 장애아동들과 정서 교류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재활치료가 아니라 재활승마다. 재활승마는 승마라는 운동 자체의 효과를 누려야 한다. 최대한 승마라는 요소를 많이 배치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게임 등은 꼭 필요한 부분만 배치한다. 장애인을 말 위에 태우고 정지운동을 한다면 힘도 덜 들고 안전하다. 하지만 땅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말 위에서 한다면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평보로 걷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새로 온 아이가 말에서 15m 떨어진 곳에서 땅에 드러누워 운다. 무섭고 말은 냄새나서 절대로 타지 않겠다는 응석이다. 장애아동들은 응석에 익숙하다. 대개는 통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말을 만져만 보자고 설득해서 말을 만지고,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 장애아동을 번쩍 들어 말에 올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이미 말안장에 올라 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며, 말에서 뛰어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훈련이 잘 된 우리 말들은 이런 상황에 놀라지 않는다. 봉사단 두 명이 아이의 양쪽에서 뛰어 내리지 못하도록 잡고 말을 걷게 한다. 몇 십 미터 걷지도 않고, 아이는 이미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다. 수십 번 겪은 일이다.
장애아동들은 가을 속에서 즐거운 기승을 했다. 수업은 안전대를 가로로 놓고 지그재그로 평보, 속보하는 연습을 한다. 속보가 많이 힘든지 슬그머니 꾀를 부리는 아동들도 생겨난다. 몸이 아프다는 아이들만 빼고는 여지없이 속보를 보낸다. 장애아동들의 마음속에서도 더 빨리 더 힘들게 운동하고 싶다는 욕구와 두려움이 싸운다. 이 갈등을 ‘안전’이라는 절대 명제로 판단해야 한다. 이래서 노련한 재활승마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원 안에서 빨리 타고 싶다는 장애아동을 단축구보까지 보내보았지만, 이내 무섭다고 포기한다. 하지만 5분 정도 더 구보를 보내고 운동을 충분히 하게 만든다. 포기가 너무 빠르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시도와 노력이 충분했다면 후회는 남지 않는다.
오늘 전라남도 여수에서 공무원들이 오셨다. 인터넷에서 우리의 기록을 찾아보고 참관하러 온 것이다. 머지않아 여수에도 재활승마의 꽃이 피어나기를 기원한다. 모두가 다 ‘강동장애인부모회’ 오금옥 회장님이 혼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이렇듯 하나의 노력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여러 개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마침 한손이 불편한 박지홍군의 승마시간이 되어, 속보와 자유 구보, 장애물 점프 시범을 보여드린다. “우와, 세상에. 너무 잘 타네요.” 여수 공무원들이 놀라 입을 못 다문다. 재활승마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까지 본 것이다.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승마라고 제한적인 승마를 할 것이 아니라, 열린 승마로 장애인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 주어야 한다.
“장애인들에게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장애인이라고 제한을 두고 닫으면 안 될 것입니다. 국내에 장애인 승마대회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지금 나와 봉사단도 열심히 씨앗을 뿌린다. 언젠가 꽃은 피겠지. 그리고 그 꽃은 유난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땀으로 거름을 준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