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경기도의 노력으로 승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 가지 지원 사업에다 정부의 승마대중화 홍보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막연히 승마에 대한 생각만 가지던 사람들이 실제로 승마장을 찾아 말을 타며 느끼는 벅찬 감동은 지켜보는 우리 승마지도자들에게까지 전해진다.
“초등학교 때 동네에 말 타는 분이 계셨어요. 나도 자라면 꼭 말을 타야지 했는데 40년 만에 꿈을 이루었네요.”
“나중에 은퇴하면 말 두어 필 기르면서 시골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어요.”
“요거 배워서 손자에게도 가르쳐줘야겠네요.”
이렇게 노년기 분들도 많이 참여해, 승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으시다. 그러나 역시 백미는 유소년들이다. 처음 말 앞에서 그 거대함에 놀라 벌벌 떨며 간신히 말을 끌던 아이들이 단 몇 주 만에 말을 제법 의젓하게 몬다. ‘역시 뭐든 어릴 때 배워야 해’라고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승마장에 오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에요. 주말에 승마 끝나면 일주일 내내 승마장 다시 올 날만 기다려요. 그냥 승마장 와서 말똥 치우면서 놀면 안 돼요?”
21세기 IT 강국의 중학생들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주말이면 느티나무 숲에서 책을 읽다가, 쪼르르 마방으로 달려가 말들을 보고, 승마장에 찾아온 대학생들에게 대학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이들은 그야말로 ‘호스 키즈(Horse Kids)’가 되었다.
나는 흐뭇하다. 몇 년 전 들은 이야기가 기억난다. 캐나다에서 여성 혼자 말 80필을 돌보는 승마장을 하는데, 요일별로 학교와 제휴를 맺어 인건비가 들지 않고 대신 승마비용을 아주 저렴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아마 우리 승마장뿐만 아니라 전국의 승마장엔 슬슬 호스 키즈가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마의 대중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미래다. 나는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그냥 승마장 와서 놀고 말 타고 스트레스 풀고, 그래서 학업에 더 정진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승마에 뜻을 두고 승마의 길로 나선다면 즉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는 것이다.
당장 안전을 위해 승마복이라도 갖추어야 하고, 승마의 길로 계속 나아가려면 각종 대회에도 출전해야 한다. 역시 말과 운송비 등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다. 여러 승마 대중화의 길 중 우리나라 승마계의 동량이 될 호스 키즈를 육성하려면, 지금보다 유소년 승마단의 창단을 더 확장하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 말을 사랑하고 말에 소질이 있는 아이들이 금전적인 걱정 없이 자신의 소신과 꿈을 펼쳐야 한다.
말을 끌어안고 보석 같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의 미래. 누가 어떻게 열어줄 것인가? 입안의 포도 맛도 잊은 채, 나는 국사봉 위의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가을은 오고 세월은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