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승마를 업(業)으로 하는 것을 아는 지인 분이, 동호회 카페에 멋진 사진을 올려주셨다. 날카로운 로키산맥과 새파란 호수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말을 타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그 멋진 사진에서 관광객들의 카우보이모자에만 눈길을 주었다. 외승을 하면서 헬멧을 쓰지 않다니!
만약 인사사고가 나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지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그 지인에게, 외국의 경우 어떻게 해서 헬멧을 쓰지 않고 외승이 가능한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건 대한민국 승마장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작년에 모 승마장에서 인사사고가 있었다. 승마장은 호프만 방식으로 9억여 원의 배상금을 80:20으로 물어야했다. 승마장 주인에게는 금고형까지 내려졌다. 이건 일반 승마장의 경우 사업을 접어야 할 정도의 비상사태다. 현재 최대 1억 원이 대한민국 모든 승마장의 영업책임보험한계다. 만약 이 판결이 항고심에서 결정된다면, 대한민국 승마장은 지금 누란(累卵)의 위기. 어쩌다 고수익자 한 명이 말 타다 인사사고 나면, 승마장을 팔아서도 해결이 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승마장 주인은 감옥에 갇혀야 한다.
이것은 비단 승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사사고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이 문제다. 모터사이클, 스키,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 산악자전거,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에 다 해당된다. 영세한 그들이 과연 몇 억, 몇 십억의 배상금을 물어낼 능력이 있을까?
승마나 기타 위험한 운동은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회원이나 고객은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자신의 선택과 책임 하에 승마를 즐기러 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승마장이 모든 책임을 진다? 돈 많은 고객이 한 번 인사사고를 내면 승마장 주인은 승마장 팔아 모조리 물어, 거지가 되고 감옥에 간다? 이게 과연 논리적인가? 게다가 이번 판결의 영향으로 보험사들은 승마장 보험 들어주기를 꺼린다. 하지만 승마장은 보험을 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설상가상이다.
며칠 전 캐나다에서 답변이 왔다. 캐나다는 승마의 위험성을 고지하고 고객이 이를 인정한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고 승마를 즐기면 그만. 승마장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헬멧 쓰고 안 쓰고도, 개인이 선택할 문제란다. 이러니 승마 산업이 발전하는 것이다. 승마 사고는 개인이 책임지고, 자신의 소득에 맞는 배상금을 받고 싶다면, 개인이 그만한 개인배상 보험을 든다.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이다. 너무나 상식적이다. 승마장이 대기업 회장님 기준에 맞추어 보험을 들 수도 없을 뿐더러, 대한민국에 그런 승마장 영업배상책임보험도 없다.
이제 대한민국 승마의 존폐는 이 사건이 판결에 달려있다. 아니 인사사고의 위험이 있는 모든 스포츠의 생사기로가 이 판결에 달렸다. 정부는 승마산업을 활성화 하자고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지뢰들을 먼저 처리해 주지 않으면 누가 승마장을 할 것인가? 평생의 성실한 노력이 기승자의 낙마 사고 한 번에 날아가고, 승마장 주인은 영어(囹圄)의 몸이 될 터인데…….
※ 다음은 '북미 승마 동의 및 책임 면제서' 양식에 나온 내용 중 일부다.
나) 승마 활동에 대한 위험도 분류– 승마는 험한 레저어드벤처스포츠로 분류되며, 이러한 유형의 스포츠에는 안전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명백하거나 명백하지 않은 위험이 있다. 미국의 국립전자부상감시시스템 (NEISS, National Electronic Injury Surveillance Systems of United States Consumer Products)에 의하면 승마 관련 행위는 미국에서 입원을 초래하는 활동 중 순위로 64번째에 해당한다. 관련 부상은 비교적 많은 입원 일자와 긴 잔류 효과를 불러오는 등 타 활동에 의한 부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
다) 승마의 속성 – 전적으로 안전한 말은 없다. 말은 인간에 비해 5~15배 가량 크며, 20~40 배 가량 힘 있고, 3~4배 빠르다. 기승자가 말에서 떨어질 경우 낙마 지점과의 거리는 대게 4.72~7.77 미터 정도이며, 기승자는 충격으로 인해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승마는 훨씬 작고 약한 사람이, 훨씬 크고 힘 센 피식 동물 (말)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고 하나의 이동 유닛이 되려 하는 유일한 스포츠이며, 두 개체는 서로에 대한 제한된 이해를 갖고 있다.
말이 겁먹거나 자극 받으면 훈련 중 주의를 돌리고 생존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데, 이에는 갑작스런 중단, 의도적 속도 및 방향 전환, 무게 전환, 버킹(갑자기 등을 구부리고 뛰는 행위), 후진, 발차기, 물기, 혹은 위험 요소로부터 뛰어 도망가기에 국한되지 않는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라) 기승자의 책임– 기승자는 말에 기승하고 고삐를 쥔 후 말에 대한 주된 제어를 갖게 된다. 기승자의 안전은 자신의 간단한 지시 이행 및 움직이는 말 위에서의 균형 유지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기승자는 자신의 안전을 책임진다.
마) 사고, 의료, 개인책임보험–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 본인 및 또는 의료보험사가 모든 발생비용을 지불한다. 본인 혹은 본인의 마필이 그 어떠한 종류든 간의 부상 혹은 손해를 끼치는 경우, 본인 및 또는 본인의 개인책임보험이 관련 비용을 모두 지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