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익숙하지 않은 말들을 방목하면, 그 즉시 말들 사이의 긴장이 높아진다. 몇 몇 말들이 그룹을 만들고, 그 그룹 간에서도 우두머리가 나서고 우두머리끼리의 다툼이 일어난다.
말들은 화폐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러니 뒷돈 거래가 없다. 셀룰러 폰도, 주고받을 비밀도 없다. 심지어는 거세(去勢)해서, 애정이나 치정 관계도 있을 수 없다.
그들 앞에는 그저 알팔파 건초 몇 덩이가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때로 목숨을 걸고, 다투고 서열을 가리고 경쟁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물의 숙명인가?
누구나 그렇지만 스스로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자기 길을 열심히 걷는다. 하지만 우리의 적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적들은 보이지 않는다. 실체도 없다. 그러나 어디선가에서 끈질기게 우리의 뒤를 캐고 있다.
'짜식 건방져', '그는 어딘가 돈을 따로 치부하고 있을 거야', '봉사? 분명히 뭔가 있을 걸?', '굉장히 가식적인 놈일 것이다. 돈 안 되는 일을 할 리가 있어?', '그 자식, 글 쓰는 체 하지만 여기저기 광고해주고 뒷돈 받을 거야'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뒷담화가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누구일까? 왜 그럴까? 왜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을까?
이쯤 되고 실제로 그런 일 없으면, 가십꺼리들은 그만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적들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하도록 태어났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평생 밑도 끝도 없이 의혹을 제기하며 그 의혹을 증폭 시킨다. 처음에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들이라 무시한다. 하지만 조금씩 그 틈이 커지고 소문이 번진다. 나는 마지못해 몇 마디 한다. 즉시 논란이 폭발한다.
우리는 정치가도, 부자도, 스타도 아니다. 그저 먹고 실가 바쁜 범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러니 사회의 전면에 선 사람들은 어떨까? 우리는 실체도 없는 적들에 의하여 평생 동안 공격 받고 검증된다. 아마 우리의 적들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적들에 의해 평생 동안 공격 받고 검증될 것이다.
방목한 말들을 바라보면, 오직 한 마리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을 중심으로 팽팽하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우두머리를 노리는 나머지 말들에 의하여 나는 누가 우두머리 인지 알 수 있다.
나머지 말들이 누가 우두머리 말인지 검증하고 증명해 주는 것이다. 머지않아 우두머리는 바뀌고 또 주변의 말들이 그를 검증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한 동물의 삶이다. 자연 상태처럼 영역을 다투거나 암컷을 다툴 일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위협하고, 미워하고, 귀를 젖히며 누런 이를 드러낸다.
왜 서로를 더 피로하게 하는지, 말들의 세계는 참 아이러니 하다. 말들의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말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람의 지옥이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일 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