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번 재분류 논의 과정에서 사전피임약이 극심한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이를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약으로 유지키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중앙약사심의위원 심의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 재분류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내년 3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 추진계획'에는 사전피임약은 전문약으로, 응급피임약은 일반약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었다.
당시 식약청은 외국에서 방관할 수 없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식약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심각한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국외에서는 정맥성 혈전색전증 발현율이 연간 여성 10만명 당 20~40건 정도에 이르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사전피임제는 유방암 및 자궁 내막암 환자, 의심 환자 또는 병력이 있는 환자에는 투여를 해서는 안되고 40대 이상 여성과 비만, 편두통, 우울증 환자 등에게는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 오남용시 혈전증, 혈전색전증, 혈전성 정맥염, 심근경색, 폐색전증, 뇌졸중, 뇌출혈, 뇌혈전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캐나다 등 의약선진외국 8개국에서 모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전피임제가 산아정책을 펴던 1960년대 들어왔고, 이 정책을 위해 외국에서는 전문약으로 분류된 사전피임제가 국내에서는 일반약으로 분류됐다. 이후 40여년간 재분류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지금까지 일반약으로 유지돼 온 것이다.
이와 같이 정부는 사전피임약이 여성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는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그동안의 사용관행과 사회·문화적 여건 등을 고려해 현 분류체계를 유지키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원종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과학적으로는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사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나 피임약은 과학적 논리만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완 대책도 함께 내놨다.
모든 피임약 구입자에게 약국에서 복용법, 주의사항 등의 적힌 복약안내서를 반드시 제공하고, 피임약 대중매체 광고에 복용시 병·의원 진료 및 상담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반영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또 피임약 복용시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한시적으로 처방전을 소지한 여성에게 보건소를 통해 피임약을 무료 또는 실비 지원하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이 대책이 과연 피임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얼마나 '보완'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안나 진정으로산부인과를걱정하는의사들모임(진오비) 대변인은 "현재 안전하다고 알려진 사전피임제를 알아서 복용하다 혈전증 등을 일으켜 응급실을 오는 사례가 많은데 이를 일반약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결정은 관련 단체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각각이 주장하는 바를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들어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방전을 가져오면 사전피임약을 공짜로 주는 식의 대책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1년 넘게 혼란만 일으키고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인데, 정부는 결국 판단을 국민들에게 떠넘긴 꼴"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역시 "오남용의 우려가 있는 응급피임약이 전문약으로 유지되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나 사전피임약이 일반약으로 남은 것은 매우 아쉬운 조치"라는 입장을 냈다.
이들은 또 "사전피임약은 장기간 복용하는 복합 호르몬제로 혈전증 등 여러 부작용 보고가 나오고 있고 지금도 제대로 안전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 예전과 같이 일반약으로 분류돼 쉽게 판매된다면 국민 건강의 안전성 측면에서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100만여명의 여성들이 사전피임약을 구입하고 있고 피임 목적 이외에도 생리주기 변경, 생리통 완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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