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은 크게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는데 그간 사전피임약은 일반약으로, 사후긴급피임약은 전문약으로 취급돼 왔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은 7일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재 일반약으로 분류된 ‘사전피임제(에티닐에스트라디올 복합제)’를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피임약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장기간(21일) 복용해야 하고, 여성 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며 투여금기 및 신중투여 대상이 넓어 사전에 의사와 논의 및 정기적 검진이 권장된다는 이유에서다.
사전피임제를 오남용하면 혈전증, 혈전색전증, 혈전성 정맥염, 심근경색, 폐색전증, 뇌졸중, 뇌출혈, 뇌혈전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흡연은 사전피임제로 인한 심각한 심혈관계 부작용(혈전증 등)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므로 사전피임제 복용시 금연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방암 및 자궁 내막암 환자, 의심 환자 또는 그 병력이 있는 환자에는 투여를 금지해야 하며, 40대 이상 여성과 비만, 편두통, 우울증 환자 등에게는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는 것이 식약청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부작용은 월경장애, 오심, 무월경 등으로 아직까지 심각한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하지만 국외에서는 정맥성 혈전색전증 발현율이 연간 여성 10만명 당 20~40건 정도에 이르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적지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위험성 때문에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캐나다 등 의약선진외국 8개국에서 모두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전피임약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수십년간 이를 방치해 온 정부의 무책임함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간 100만여명의 여성들이 사전피임약을 구입하고 있고 피임 목적 이외에도 생리주기 변경, 생리통 완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약국에서 사전피임약을 구입한 이는 105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해 사전 경구 피임제 생산실적이 52억원임을 감안하고 약값을 5000원으로 가정했을 때의 수치다.
식약청 관계자는 “사전피임제의 경우 1960년대 국내에 들어왔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시기였다”며 “따라서 외국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한 사전피임제를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약으로 분류했고 이후 유사한 피임제들도 전문약으로 분류돼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약품 재분류 제도가 도입된 것은 85년으로 그 이후 제대로 분류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만 이번에 환경 변화에 맞게 전면 재분류 작업을 실시하면서 사전피임제가 부작용 및 약물상호작용 측면에서 의사의 지시,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전문약 전환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정부가 사전피임약을 전문약으로 전환할 경우 가뜩이나 낮은 사전피임율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현재 정부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사후긴급피임약의 오남용 비율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외국에서 방관할 수 없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과학적 기반과 더불어 각계 이해당사자, 관련 협회 등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국내 시판 중인 사전피임제는 총 8종으로 이 중 2종은 신약이어 이미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만약 이번에 사전피임제의 전문의약품 전환이 확정되면 현재 국내에 풀린 8종의 사전피임제 모두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단체, 시민단체, 종교계, 여성계, 언론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고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 분류 결정을 7월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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