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사회다. 하룻밤 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급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싱크탱크(Think Tank)'가 있다. 오늘날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전략의 근간이 되는 연구결과를 수시로 내놓기도 한다. 이에 정부와 기업들은 앞다퉈 최강의 싱크탱크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다사다난한 해가 될 전망이다. 밖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선거, 안으로는 4월 총선에 이어 12월 대통령선거라는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예측하고 분석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 싱크탱크는 이 때문에 큰 관심을 받는다. 이에 뉴시스는 올해 대한민국 싱크탱크를 집중 재조명한다. 12회째 순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최금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양성 모두를 위한 정책을 연구합니다."

【서울=뉴시스】송윤세 기자 = 2010년 우리나라 성평등 지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62.6점으로 나타났다. 가족, 복지, 보건, 경제활동, 의사결정, 교육·직업훈련, 문화·정보, 안전 등 8개 부문 중 보건이 89.1점으로 성차별이 가장 적었고, '의사결정'이 19.2점으로 성차별이 가장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분야, 특히 국회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하는 의사결정직의 경우 여성대표성이 매우 낮은 수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8대 총선결과 여성의원 비율은 전체 의원 수 299명 중 41명에 불과한 13.7%, 19대 총선결과 여성 참여는 15.7%로, 국제의원연맹(IPU) 회원국의 평균 19.1%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금숙 (63·사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여성의 활동이 미진한 곳이 많다"며 "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 인력이 사회에 효율적으로 활용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성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제도에 반영하는 것은 여성에게만 특혜를 줘 상대적으로 남성을 차별하게 되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 원장은 "여성정책연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성평등'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여성에 비해 남성의 사회적 진출과 활동이 여성보다 월등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러한 불균형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여성에 대한 부족한 정책을 보완하고, 반대로 남성이 차별당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을 위한 정책개선 사례로 2009년 제주도 마을 쉼터 정자높이가 기존에 120㎝였던 것을 여성과 아동, 노인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60~80㎝로 낮추도록 권고한 일, 2010년 국방부가 여군에게 남성군인 체형을 기준으로 한 작은 사이즈의 전투복을 보급하던 것을 여군전용 전투복을 개발해 보급토록 한 일 등을 실례로 들었다.

또 남성을 위한 정책개선을 위한 사례로 아동을 동반한 남성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남자화장실에 아기기저귀 교환대를 마트 내에 설치토록 했고, 여성무용수를 들어 올려야하는 동작이 많은 남성무용수가 치료비 지출이 상당하다는 점에 착안해 남성무용수에게 무용단이 치료비를 지불토록 권고한 사례 등도 덧붙였다.

지난 24일 최 원장을 만나 연구소의 활동 내용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운영철학이 있다면.
"충분한 '소통'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효율적인 성과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원장실 문을 늘 열어 놓고, 직원들끼리도 원활한 소통을 늘 강조한다. 3년 원장 임기 동안 선진국 수준의 성평등 사회를 이끌어가는 세계적인 여성정책 연구기관을 비전으로 성평등 국격제고, 연구역량 강화, 경영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정책연구원이 벤치마킹하는 연구소나 프로젝트가 있나.
"따로 벤치마킹하는 연구소나 프로젝트는 없다. 다만, 시의적절하고 국민들에게 실효성 있는 정책연구를 제공하기 위해 정책 현안과 국내·외 동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유관부처 및 기관과 교류협력 및 공동사업 등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연구원은 어떤 사이클로 운영되나.
"국책연구기관의 경우 1년을 주기로 돌아간다고 보면 된다. 4~5월이면 다음해 연구사업 계획 초안이 나오고, 11월에 확정을 한다. 연중 내내 정책현안이나 수시과제나 부처 등에서 수탁과제를 받아 진행하며 사회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여성정책포럼 등 관련 행사 개최나 간행물 발간 등의 업무도 꾸준히 하고 있다."

-연구원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특별한 사업이 있나.
"국제개발협력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제교류 사업으로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의 고위공무원, NGO(비정부기구) 활동가, 정치인 30여명을 초청해 여성정책 개발을 위한 역량강화 현지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워크샵은 많은 기관들이 진행하고 있는 기존 여성과 개발에 대한 강의 중심의 연수프로그램에서 한 단계 나아가, 참가자들의 관심분야에 대한 집중 토론과 전문가 컨설팅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또 오는 8월 연구원 어린이집을 개원한다. 우리 연구원뿐만 아니라 주변 연구원과 기관의 직원들이 자녀를 맡길 수 있다. 과거에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맡기는 어린이들이 감소해 없어졌다 이번에 다시 재구성해 운영된다."

-여성할당제도에 대한 최 원장의 견해는.
"현재 우리나라의 성평등 지수 중 가장 낮은 부문은 여성의 의사결정 참여 부분이다. 특히 여성 정치참여 비율이 30%를 넘는 국가가 26개국에 이르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여성 30% 참여' 달성이 요원한 상황이다. 2000년 이후 여성 정치참여를 증진하기 위해 할당제를 시행한 뒤 비례대표 의석수는 전체 의석수의 18%에 밖에 차지하지 못해 50% 여성할당이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지역구 여성공천 30%할당제가 19대 총선 시에 공천개혁의 화두로 등장했지만, 총선 실시 중 여성공천 30%는 약속불이행으로 나타났고, 지역구 여성공천 비율은 7%에 그치고 말았다. 향후 여성 정치 할당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보다 확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30년간 연구원이 이룬 업적이나 성과를 설명해 달라.
"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 경제활동·인권보호·성평등 실현 등과 관련된 법률제정 및 제도 수립에 기여하면서 우리사회의 양성평등수준 향상에 기여해 왔다. 특히 본 원은 한부모·조손부모·미혼모 가족 등을 위한 정책방안 마련에 기여했다. 또 성 인지예산(Gender Budgeting)제도와 성별영향평가의 시행, 공무원·대학교원 등의 여성 채용․임용 목표제 도입과 호주제폐지, 성매매특별법 등 여성인권관련법률의 통과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또 경력단절여성등의경제활동촉진법 입안의 기초자료 제공, 저출산과 일가족 양립, 여성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정부의 여성가족정책을 뒷받침하는 심도있고 집중적인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연구원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나 계획은 무엇인가.
"연구원은 매해 사업목표와 이에 따른 중점연구사업을 정해 진행한다. 올해는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연계강화와 미래전략 개발 ▲사회통합을 위한 여성인력 역량증진과 일자리 확대 ▲여성아동의 인권안전 강화와 성평등 문화 확산 ▲성 인지 정책기반확대 및 정책 적용분야 확산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저도 30여년 전 출산으로 인해 일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첫째 아이를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상담원으로 일했다. 둘째 출산 후에는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어 5년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 기억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자녀양육과 일·가정양립문제로 자아실현과 직장일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나오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다양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 양육을 경험하면서 경력단절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 좋은 보육환경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환경을 갖췄다 해도 '애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인식이 있어 직장과 육아에 대해 고민하는 여성들이 있다. 이들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조언을 한다면.
"결혼이나 출산으로 직장을 떠나는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아직까지 많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여자에게만 육아 및 가사의 의무를 부가하는 모순된 인식, 낡은 인습이 사라진다면, 남녀가 함께 육아와 가사를 분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탈북여성을 위해 연구원에서 추진하는 정책과 교육프로그램이 있나.
"올해는 북한이탈여성의 부모역량 강화, 북한이탈 청소년의 성별 실태 분석 및 여성청소년 지원 방안 연구, 북한이탈주민 직업교육의 효과성, 자립·자활을 중심으로 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지난해에는 북한이탈여성 취업지원을 위한 직업교육훈련 효율적 운영방안, 탈북여성 생애주기별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증가하는 다문화가정에 대해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까.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가족과 이주민 가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을 우리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 다문화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상별 및 생애 주기별 맞춤형 다문화교육 강화', '일반국민과 다문화가족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 제공 강화', '다문화 인식 제고를 위한 미디어 환경 개선' 등이 필요하다. 정책제안차원에서 '의자매 관계맺기', 법률적으로 다문화가족지원법상 다문화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고, 지원을 늘리는 등의 방법이 있다."

-기금까지 연구원을 운영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잇다면.
"여성정책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데 아직까지 이런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연구원은 그동안 여성관련 예산, 성별영향평가, 여성관련 통계 등의 성 인지 정책 연구를 통해 남녀 모두에게 공히 실효성 있는 정책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향후 연구원의 중·장기적 추진계획은.
"3년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사회통합 달성을 위한 다문화 이주여성 및 북한이탈여성 관련 연구'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문화이주여성과 북한이탈여성이 증가하면서 그들에 대한 수용성은 다문화 사회에서 공존과 차별 개선에 긴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고립 탈피와 균형적 관계 형성 등을 핵심 정책과제로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

knat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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