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무작정 식사량을 줄이다가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에 걸려 심신을 망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서울에 사는 20세 여성 김성은(가명)씨는 중 2때 160㎝에 70㎏으로 경도 비만 상태였지만 자신의 몸매에 별 불만을 갖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김양은 식사량을 조절하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3시간 운동으로 1달 만에 12㎏을 감량해 목표체중 58㎏에 도달했지만 김양은 만족하지 못했다. 식사량은 더 줄었고 식탁 위 반찬도 3가지로 한정됐다.

소식(小食) 습관은 곧 금식(禁食)으로 치달았고 상황은 심각해졌다. 1주일에 오이 1개, 감자 1개, 아이스크림 1개만 섭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상대로 몸무게는 급감했다. 중3 1월 신체검사 때 52㎏이었던 몸무게는 3달 뒤 체격검사 때 42㎏까지 줄었고 1달 뒤에는 35㎏까지 빠졌다.

몸도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좀처럼 땀이 나지 않아 체온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여름엔 온몸이 순식간에 불덩이처럼 변하는가하면 기온이 조금만 낮아져도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머리숱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고 반대로 몸 곳곳에선 털이 자랐다. 월경도 1년 동안 중단됐다.

수면시간은 2~3시간까지 줄어들었고 성격도 예민해졌다. 가족이 음식을 사오면 화를 내며 변기에 버리거나 집밖으로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김양은 "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며 "내가 걸었던 그 지옥 같은 길을 다시는 누구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양처럼 거식증에 걸리는 사람은 현재 10만명당 1~5명 수준이지만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거식증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강희찬 백상정신과 식이장애클리닉 원장은 "예전에 비해 환자가 늘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거식증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마른 체형과 완벽한 몸매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압력 때문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섭식장애클리닉 측은 "대중매체가 끊임없이 날씬함과 다이어트를 부추기고 있다"며 "이는 청소년에게 만성적인 다이어트를 유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사회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애초에 섭식장애가 발병하기 쉬운 유형도 따로 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 ▲음식, 체중, 체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 ▲어린 시절 과도한 보호나 부모님의 통제 속에 성장해 독립심을 기르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순응할 것을 교육 받은 사람 ▲신체적, 성적으로 학대 받은 기억이 있는 사람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일단 거식증에 걸렸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치료 가능성은 충분하다.

거식증 환자는 우선 전문의 진찰을 통해 병의 진행단계, 신체적·정신적 위험도를 평가한 후 본격적인 치료를 받게 된다.

주요 치료 방법은 ▲자신이 왜 그리도 병을 붙들고 있는지 무엇이 건강한 삶으로 가는 것을 가로 막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동기부여치료' ▲과거 경험과 연관된 잘못된 생각과 감정들이 어떻게 거식증과 연결돼있는지 스스로 이해하는 '인지분석치료' ▲식사 계획 짜기, 요리치료, 명상치료, 자기주장훈련, 불안조절훈련, 창의적 표현, 창의적 미술치료, 연극치료 등으로 구성된 '작업치료' 등이다.

적절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은 발병 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을 향해 체중과 몸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강희찬 원장은 "단기적으로 몸무게를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며 "무리한 다이어트는 요요현상이나 우울증, 성격 파탄, 심한 감정 기복만을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하게 식사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중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김율리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왜곡된 사회적 가치를 단번에 바꾸기란 어렵다"면서도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만의 영역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거식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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