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정진하 기자 =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옛 격언에 신빙성을 더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런던 대학의 세미르 제키(Zeki) 교수 연구팀이 최근 과학전문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된 감정은 공통된 뇌 부분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 텔레그라프지가 28일 보도했다.

연구팀은 17명의 남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증오하는 인물의 사진과 친숙하면서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때 나타나는 뇌의 반응을 촬영했다. 연구팀은 앞서 사랑하는 사람을 봤을 때 나타나는 뇌의 반응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연구팀은 분노를 느낄 때 활성화되는 특정한 뇌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위 '증오회로'라 명명된 이 뇌의 영역에는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고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데 중요한 뇌 부위가 포함됐다.

대뇌피질의 뒤 쪽에 위치하는 부피질(sub-cortex)에 속해 있는 내과피(putamen)와 뇌섬엽(insula)이라 불리는 이 부위는 사랑을 느끼는 대상을 봤을 때도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사랑하는 대상을 봤을 때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내과피가 반응한 것과 관련 "경쟁자로부터 사랑하는 대상을 쟁취하고자 하는 등 사랑에서 필요한 공격적 행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뇌섬엽은 괴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부분은 사랑하는 대상을 봤을 때나 증오하는 대상을 봤을 때 모두 활성화돼 사랑이 증오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괴로움을 동반함을 증명했다.

한편 분노를 느낄 때 활성화됐던, 전두피질의 한 영역은 사랑을 느낄 때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 영역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랑을 느낄 때 판단력을 관할하는 뇌 부분이 비활성화됨으로써, 대상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반응이 분노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분노가 사랑과는 달리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해를 입히는 과정에서 치밀한 계산 및 판단력을 요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구팀은 또 실험 참가자가 느끼는 '증오'의 강도에 따라 뇌의 활동에 차이가 나타나, 분노를 계량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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