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기 문이 열리고 십 여두의 경주마가 발주기를 박차고 나온다. “○번마, ○번마를 제치고 선두로 치고 나갑니다” 경주상황을 알리는 경마중계 아나운서의 박진감 넘치는 멘트는 장내 분위기를 한 것 돋운다. 경주가 막판으로 치달으면서 응원하는 경주마에 베팅한 경마팬들의 응원은 절정에 달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선두 후미에 있던 ‘ㄱ’이라는 경주마가 ‘ㄴ’이라는 경주마를 추월하면서 ‘ㄴ’경주마의 진로를 방해한 것 같다. 그 결과 탄력 받으면서 잘 나가던 ‘ㄴ’마필이 아쉽게 2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면 ‘ㄴ’경주마에 베팅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주가 끝났지만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어 “이번 경주는 심의경주입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수만의 경마팬들이 심의결과를 기다린다. 심의결과 1등으로 골인한 경주마가 2등으로 골인한 경주마의 진로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되어 1등과 2등의 순서가 뒤바뀐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장내가 들썩인다. ‘ㄱ’에 베팅한 경마팬들이 잔뜩 화가 난 것이다.
본인이 베팅한 경주마가 다른 말의 방해를 받아 경마에서 졌을 때, 반대로 경마에서 이겼는데 내가 베팅한 말이 다른 말에게 방해를 했다고 등수에서 빼거나 실격을 당할 때가 종종 있다. 경마의 특성 상 누군가가 이기면 또 누군가는 지게 되어있으므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화가 나는(?) 반대급부는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마사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천 건 씩 경주심의에 대한 불만의 글이 올라오기 일쑤이다.
하지만 공정함이 생명인 경마에서 불공정이 개입할 수 있는 요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가 응원했던 말이 경주에서 지게 되면 마냥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경주심의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KRA 서울경마공원에서 운영하는 ‘일일명예재결위원’에 도전해보자. KRA는 지난 1997년부터 20명 내외의 일일명예재결위원을 운영해 경마팬들을 대상으로 실제 재결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총 17주 동안 동 제도를 운영해 24명의 일반 경마팬들이 직접 재결업무를 참관하기도 했다. 작년도 시행 결과 참여 인원의 대부분이 재결판정의 공정성 및 제재 절차의 수준과 방법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보였으며 참관 전에 비해 호의적인 반응도 늘었다는 게 재결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재결판정의 공정성, 투명성, 정확성을 묻는 질문에 참여인원의 전원이 매우 공정하며 정확하다는 답변을 냈다.
그렇다면 일일명예재결위원은 무슨 일을 하는걸까? 우선 경마시행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개괄적 경마시행 절차 및 현황 소개’를 시작으로 ‘재결업무수행 동행참관 및 관련설명’을 제공받는다. 또한 ‘착순판정과 발주, 핸디캡 등의 업무 참관’의 기회도 제공 된다. 그 중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재결업무수행 참관’이다. 참여하는 고객들의 대부분이 5년 이상 경마를 즐겼던 나름 경마고수지만 재결업무와 관련해서는 사실 그다지 아는 게 많이 없기 때문에 평소 궁금증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일일명예재결위원은 재결전문위원들이 다니는 동선을 그대로 동행하며 재결업무 전체를 참관할 수 있다. 우선 관람대 6층 재결실에서 경주를 관전하게 된다. 평소 일반 경주용 모니터로만 경주를 보다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멀티비전으로 보게 된다. 멀티비전에는 송출용 경주 장면 뿐 아니라 기수 개개인의 기승내용을 다양하게 볼 수 있어 조금의 이상한 장면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주가 끝난 후에는 지하 심의실로 재결위원들과 함께 이동해 실제 심의과정도 참관하게 된다. 단, 원활한 심의를 보장하기 위해 명예재결위원은 심의 중에는 의견을 개진할 수 없고 심의과정이 끝난 후 개인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다.
재결전문위원은 이처럼 일반고객들로 하여금 재결업무참관의 기회를 제공해 경마시행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고자 애쓰고 있다. 금년도에는 작년보다 참가자수를 늘려 30명 규모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모집기간은 오는 2월부터 12월까지 상시접수가 가능하며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모집과 본장 및 각 지점의 안내데스크에서 오프라인 접수도 가능하다. 재결 관계자는 가족단위 경마팬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부부나 가족끼리 동반 신청하는 경우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평소 경주진행 과정에서 궁금증이 많았던 고객이나, 경마의 공정성이나 재결의 판정에 불만이 많았던 고객이라면 불평만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