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와이드리시버 하인스 워드는 얼마전 주말 특별한 저녁모임을 가졌다. 한국 혼혈아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16세에서 21세의 나이인 이들은 주변의 괴롭힘에 자살을 기도한 소년도 있고 학교선생으로부터 곱슬머리를 강제로 펴도록 강요받은 소녀도 있었다.

버스를 타면 놀림을 당하는게 싫어서 학교를 홀로 걸어갔던 아이도 있고 툭하면 얻어맞고 괴롭힘을 당한 아이도 있었다. 대학생의 나이가 된 소녀들은 한국서 당한 차별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뉴욕타임스가 9일(현지시간) 스포츠섹션 1면에 하인스 워드가 한국 혼혈아들과 함께 한 특별한 사연을 소개했다.

타임스는 아이들이 저녁 테이블에서 얘기를 나눌 때는 표정이 밝았다고 전했다. “이곳에선 나를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이 없어요. 아무도 내 머리 색깔이 이상하다고 말하지도 않아요.” 올해 스무살인 리사 소 양은 “이곳은 내게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하인스 워드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온 이들 혼혈아들은 한국에서는 호기심과 경멸의 대상이다. 왕따와 차별로 인해 학교를 자퇴하거나 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자살하는 비율도 많다.

한국인 어머니와 군인이었던 흑인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하인스 워드는 한국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 미국 조지아로 건너왔다. 그는 “한국은 위대한 문화를 갖고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나는 그 어둠에 밝은 빛을 주려고 노력했다. 한국은 점점 나은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스는 한국이 2006년만 해도 혼혈인을 무시하는 나라였지만 워드가 수퍼볼 MVP가 되자 재빨리 그를 한국계 선수로 연결짓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그해 봄 워드와 그의 어머니 영희 워드 씨는 근 30년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수많은 TV카메라와 팬들의 환영을 받았고 한국 대통령의 축하도 받았다. 워드는 “미국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혼혈인들이 겪는 현실을 통해 한국사회의 감춰진 위선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유명해졌기 때문에 나를 좋아했습니다. 만일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아주 냉정했겠지요. 그래서 난 행복하면서도 쓰라린 아픔을 느꼈어요.”

펄벅재단을 돕고 있는 풍산그룹의 류 진 회장은 1965년부터 한국의 혼혈아동들을 돕고 있다. 그는 “한국은 닫힌 사회였다. 그러나 하인스 워드가 오면서 모든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인스 워드는 부모의 이혼으로 처음엔 아빠와 생활을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집으로 옮겼다. 영어를 거의 못해서 아주 낮은 임금밖에 받지 못한 그의 엄마는 지금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일한다.

워드는 성장기에 “정체성을 찾는게 아주 힘들었다”고 말한다. “흑인 아이들은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백인아이들은 내가 흑인이라서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 아이들은 혼혈이기 때문에 놀아주지 않았다.”

그는 “자라면서 친구들을 찾는게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스포츠에 더 빠졌다. 그곳에선 피부색깔을 따지지 않으니까”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타임스는 한국에 있는 1만9000여명의 혼혈아들에게 워드와 같은 안식처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빠르게 늘고 있는 혼혈아들은 부모가 다른 아시아 국가가 모국인 이른바 ‘코시안’들이다.

흑인이나 백인 군인들을 아버지로 한 아메라시안들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의식은 여전히 두드러진다.

피츠버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고원도 씨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단일혈통의 나라다. 그래서 피부색이 다른 경우를 보면 불편한 느낌을 갖는다. 점점 혼혈인들에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인들은 적절한 대응을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워드와 펄벅 국제재단은 지난 4년간 미식축구 시즌이 열릴 때마다 한국서 혼혈청소년들을 초청했다. 이들은 펄벅재단을 통해 아이들을 입양한 가정에서 묵으며 자신들의 경험을 나눈다.

워드는 아이들에게 ‘절대 부끄러워 말라’고 말한다. 도리어 양쪽 문화를 통한 기회를 잡으라는 것이다. 워드와 풍산의 류 진 회장은 얼마전 공항에서 아이들을 픽업한 후 이튿날 데이브&버스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한국식당에도 갔다.

선물도 교환하고 두명의 소년은 태권도 시범을 했으며 두명의 소녀는 노래를 불렀다. 이번 여행에 응모하기 위해 썼던 에세이를 읽고 몇 명은 울기도 했다.

이 중 한민혁 군(16)은 한국서 두명의 아이를 입양한 라이언 리틀-메어리 켈리 부부의 집에 머물고 있다. 켈리 씨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유명인사처럼 지낸다. 아이들이 한국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는게 상상이 안간다”고 말했다.

타임스는 한 군이 재미있고 똑똑하며 나이에 비해 성숙한 소년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종종 미국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 군은 조부모와 증조할머니와 함께 산다. 어머니는 근처에서 살지만 미군이었던 백인 아버지에 대해선 아는게 없다. 사촌들도 그를 꺼린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두번 꼴로 괴롭힘을 당하고 말로 당하는 폭력은 매일 일어났다. 엄마를 모욕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앉자 테이블에 앉으면 아이들은 다른 테이블로 옮겨앉기 일쑤였다. 길을 갈 때면 나이 많은 아이들로부터 혼혈아라며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 군은 이같은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할아버지가 먹는 약을 모아서 먹기도 했고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2006년 하인스 워드를 처음 만난 한 군이 둘이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자 갑자기 대우가 달라졌다. 매일 쏟아지던 적대감이 사라졌다. 몇몇 친구들은 그가 혼혈아라서 멋지다는 말까지 한다. 한 군은 “한국은 매년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비록 느린 변화이지만”하고 말했다.

스틸러스가 미네소타 바이킹스와 경기를 한 지난달 25일 하인즈 필드에서 이들은 경기를 관전했다. 워드의 백넘버 86번을 장식한 채 워드가 나타나자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했다.이튿날 아이들은 펄벅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일주일 간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뉴욕 등 미 동부를 관광했다.

타임스는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갈 때는 신뢰라는 강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며 ”어제의 차별에서 내일의 포용을 얻는 과도기에 아이들이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기사를 맺었다.

“아이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 앉았을 때 서로 다르게 생긴 얼굴들은 더 이상 낯설게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환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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