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마비(天高馬肥)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가을 하늘이 높으니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은 기후가 매우 좋은 계절임을 형용하여 이르거나 활동하기 좋은 계절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천고마비라는 말의 원말은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로, 당나라 초기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시에서 나왔다. 두심언이 전쟁에 참가한 친구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며 지은 시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시의 한 구절에서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말 그대로 풀어쓰면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찐다'로 해석된다.
또 은나라 초기 중국 북방에 흉노족이라는 부족이 겨울철에 대비하기 위해 자주 침입했는데, 북쪽 지방에 살던 중국인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오면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대의 말들은 과연 가을에 살이 찌는 게 사실일까? 최근 KRA 한국마사회(회장 김광원)가 서울경마공원의 말을 대상으로 분석한 재미있는 자료를 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KRA 서울경마공원에는 1420두의 경주마가 입사해있는데 평균 1달에 한 번 꼴로 경주에 출전한다고 한다.
경주에 출전하는 모든 경주마는 ‘마체중 검사’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의 체중기록을 근거로 경주마의 체중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우선 전체경주마 중 국산마와 외산마로 구분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에 포함된 표본의 수는 국산마가 1100두, 외산마가 320두로 각각 77.5%와 22.5%를 차지했다.
1100두를 대상으로 한 국산마의 경우 일 년 중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갔던 달인 10월 전체경주마 평균체중이 458.0kg으로 1년 평균체중 450.4kg보다 8kg정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체중이 많이 나갔던 달은 12월로 457.7kg으로 나타났다. 외산마의 경우에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일 년 중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갔던 달은 국산마와 마찬가지로 10월로 조사됐다.
외산마의 10월 평균체중은 473.5kg으로 조사됐으며 외산마 320두 전체평균 체중인 464kg에 무려 10kg 가까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체중이 높았던 달로는 9월과 12월로 각각 471.4kg으로 조사됐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천고마비’라는 옛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KRA 한국마사회의 한 관계자는 “자연상태의 말들이라면 몰라도 항상 훈련을 해야하는 경주마들의 경우에는 계절적 요인에 따른 체중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주마의 경우 경주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나면 많은 에너지소모로 인해 10kg이상 체중이 감소하게 된다”면서 “월별 미세한 체중변화는 계절적 요인 때문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전체경주마로 한 이번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3세 전후마필도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하반기 체중이 늘어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사에 포함된 1,420두의 말 중에는 2세마와 3세마도 포함되어 그 마필들이 성장을 하면서 자연스레 체중이 증가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또 같은 훈련에도 상대적으로 체력소모가 많은 여름을 지난 후 선선한 날씨가 오면서 체력소모가 줄어들어 체중감소 추이도 적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만약 자연상태의 말이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몸짱 경주마들이 즐비한 서울경마공원에서 ‘천고마비’란 말은 해당사항이 없는 게 아닐까?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