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인] 김명곤 논설위원 = 요즘 사법부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법원이 왜 저러냐”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그런데 막상 삼권분립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원칙이고 어디서부터가 일탈인지에 대해서는 정리가 잘 안 돼 있다.
헌법의 삼권분립은 입법·사법·행정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라는 약속이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얘기다. 문제는 이것을 “세 권력이 똑같은 높이에서 따로 서 있는 것”처럼 이해한다는 점이다. 마치 국회, 정부, 법원이 각각 하나의 주권자처럼 움직여도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삼권분립은 권력을 셋으로 나누는 제도가 아니다. 주권은 국민에게만 있다. 국민이 투표로 국회를 만들고, 대통령과 지방정부를 뽑는다. 입법과 행정은 국민이 직접 권한을 위임한 선출 권력이다. 국회에 법을 만들 권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는 성격이 다르다. 판사를 국민이 직접 뽑지 않는다. 정치적 이해에서 한 걸음 떨어져 법률 전문성에 따라 판단하라는 이유로 임명 절차와 임기, 신분 보장을 헌법에 따로 두고있다. 국민이 우회적으로 권한을 맡긴 ‘전문 권력’에 가깝다. 그래서 존중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하는 자리다.
지금 한국의 풍경은 이 지점에서 꼬이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말을 방패처럼 내세우며, 사법부를 사실상 성역처럼 다루려는 기류가 보인다. 국회와 정치가 논쟁해야 할 사안까지 법원 판결 한 줄로 결론을 낸다. 판결의 기준과 과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공격”으로 몰린다. 독립을 말하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가 보인다.
이렇게 사법부를 비판 불가능한 영역으로 올려놓는 순간, 삼권분립은 균형이 아니라 왜곡이 된다. 선출 권력은 선거라는 공개적인 심판을 받지만, 사법부는 조직 내부의 인사와 관행을 통해서만 정리가 이뤄지기 쉽다. 그때 “독립”은 국민 앞에 책임지는 힘이 아니라, 조직을 보호하는 두꺼운 벽으로 변한다.
정치권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갈등을 제때 조정하지 못하고, 민감한 쟁점을 “법원에 맡기자”는 말로 떠넘겨 온 관행이 오래됐다. 입법과 타협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재판으로 넘기다 보니, 사법부가 정치의 빈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떠맡게 됐다. 그 과잉 역할이 지금의 혼란을 부른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흔들어 정치 권력 아래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법부가 명확히 인정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행사하는 권한의 민주적 뿌리가 선출 권력보다 약하다는 사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더 투명하게 설명하고, 스스로 권한을 절제할수록 신뢰와 독립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도 할 일을 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왜 그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법 체계의 빈틈을 점검해야 한다. 모호한 조항을 고치고, 입법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우선적 권한은 목소리 크기에서가 아니라, 책임 있게 제도를 고치는 힘에서 드러나야 한다.
선거철마다 “주권자는 국민”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예외는 없어야 한다. 사법부 역시 국민 위에 서 있을 수 없다. 삼권분립은 세 권력이 서로 성역을 나누어 가지라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맡긴 일을 각자 책임 있게 수행하라는 요구다.
사법부도, 국회도, 행정부도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한을 사용하는 기관일 뿐이다. 성역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시받아야 할 공적 권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높은가”를 따지는 서열 논리가 아니다.
국민이 맡긴 권한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 흐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삼권분립을 성역이 아니라 책임의 질서로 다시 세우는 것, 그 지점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