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인] 김명곤 논설위원 =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코앞에 초고층 개발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일단 걱정이 앞선다.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훼손당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98.7m와 141.9m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종묘의 풍광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건축 행위를 넘어, 600년 역사의 문화유산에 대한 폭력이며,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드레스덴의 교훈: 세계유산 지위는 영원하지 않다
역사에서 개발 논리가 문화유산 가치를 압도했을 때 비극이 발생한 뼈아픈 교훈들이 있다. 먼저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사례다.
18~19세기 아름다운 바로크 도시 경관으로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던 드레스덴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엘베 강변에 발트슐뢰센 다리건설을 추진했다. 유네스코는 이 다리가 유산 경관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드레스덴 시는 2007년 시민투표를 거쳐 다리 건설을 강행했다.
결국 유네스코는 경관 훼손의 심각성을 반영하여, 2009년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세계유산 지위를 삭제했다. 이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이라도, 그 가치를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언제든 영예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였다.
리버풀의 전철: 개발은 때로 파멸을 부른다
다른 사례는 영국의 '리버풀 해양 상업 도시'다. 18~19세기 세계 무역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근대식 건물과 부두가 잘 보존되어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시 당국이 대규모 현대적 재개발을 강행하면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유네스코의 지적을 수차례 받았다. 결국 2021년, 리버풀역시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 눈앞의 유산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사례다.
종묘, 미래 세대의 자산이다
종묘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라는 인류무형문화유산과 더불어 완전하게 살아 숨 쉬는, 인류 전체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드레스덴과 리버풀의 사례가 보여주듯, 눈앞의 이익을 위해 유산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은 결국 국제적 망신과 문화적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 서울시는 종묘 경관을 해치는 고층 개발 계획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종묘를 단순히 규제 대상이 아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보존에 힘써야 한다. 문화유산 보호와 도시 개발은 상생할 수 있고, 그 해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자세이다. 종묘의 비명에 귀 기울일 때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외국인 방문이 늘어나고 있는 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