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인] 조진성 기자 = 밥 우드워드는 인터뷰 중 손가락 하나로 새끼손가락을 누른다. 아플 때까지. 그 통증은 "입 다물고, 듣고, 침묵이 진실을 빨아들이게 하라(Shut up, listen and let the silence suck out the truth)."는 명령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다.
침묵은 진공이고, 자연은 진공을 견디지 못한다. 질문 후 찾아오는 정적 속에서 사람들은 입을 연다. 우드워드는 이 방법으로 닉슨부터 트럼프까지 아홉 명의 대통령에 관한 책을 썼다.
우드워드의 방법론은 역설적이다. 덜 말하고 더 깊이 듣는다. 한 4성 장군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장군은 쏘아부쳤다.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나?" 우드워드는 침묵했다. 긴 정적이 흘렀다. 장군이 먼저 문을 열었고 두 시간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경청의 다섯 가지 방법론
첫째, 현존(presence)이다. 우드워드는 전화나 이메일 인터뷰를 거부한다. 직접 상대방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75세가 된 지금도 "나는 두려웠다"고 말한다. 경청은 상대방의 영역으로 들어가 자신을 낮추는 용기다.
둘째, 준비(preparation)다. 그는 인터뷰 대상자를 구글링하지 않는다. 1986년에 쓴 무명의 논문까지 찾아낸다. "당신 어머니만 읽었을 그 글까지 제가 읽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상대방은 이 사람이 자신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청은 사전 작업이다.
셋째, 침묵의 전술(strategic silence)이다. 상대가 답변을 마쳤을 때 우드워드는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기다린다. 그 어색함 속에서 상대방은 무언가 더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 순간 준비되지 않은 진실이 나온다.
넷째, 의미 부여(validation)다. 그는 인터뷰이에게 "어차피 기사는 쓸 건데 당신도 말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지 않는다. 대신 "왜 당신의 이야기가 중요한지, 왜 당신이 이 퍼즐의 핵심 조각인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 진심을 연다.
다섯째, 검증(documentation)이다. 우드워드는 증언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메모나 문서 같은 것 혹시 없습니까?" 처음엔 다들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세 번째 방문쯤 되면 "위층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라며 세 상자 분량의 문서를 가져온다.
거만의 악마
캐서린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은 워터게이트 보도로 절정에 오른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경고했다. "거만의 악마를 조심하라(Beware the demon of pomposity)." 자기중요성, 자기만족, 독선의 증후군이 모든 직업을 망친다는 것이다.
거만한 자는 듣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링컨은 각료회의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에도 끝까지 귀를 기울였다. 만델라는 감옥에서조차 간수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2014년 전 CIA 국장 로버트 게이츠는 POLITICO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드워드를 CIA에 영입하고 싶었다. 책임 있는 어른들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그에게는 다 털어놓으니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우드워드는 '잡으려고(gotcha)' 듣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듣는다.
선거와 경청
선거철 우리는 공약 검증에 열중한다. 여기에 더하여 경청 능력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후보자가 유권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보라. 질문이 끝날때까지 침묵하는가? 카메라가 아니라 질문자의 눈을 보는가?
후보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유권자 앞에서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가? 당신은 상대 후보의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가? 당신은 질문자가 말하는 동안 다음 답변을 준비하는가, 진심으로 듣는가?
유권자인 우리 자신에게도 묻는다. 우리는 다른 진영의 주장을 편견 없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한 표를 행사하기 전에 얼마나 많이 상대 진영의 말을 들었는가?
우드워드는 대통령의 역할을 "우리 나라를 다음 단계의 선(the next stage of good)으로 데려가는 것"이라 정의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그 여정은 말이 아니라 경청에서 시작된다.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를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