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교보신탁, ‘갑질’·‘용역 동원’ 논란 확산

[뉴스인] 조진성 기자 = 국정감사 증인 명단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 포함되면서, 금융계열 신탁사가 건설 현장에서 보여온 불공정 행태가 정면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공사비 분쟁을 넘어 금융–건설 권력의 불균형, 대기업 신탁사의 책임 회피, 불법 용역 동원 의혹까지 얽혀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합의 파기”에서 촉발된 분쟁
논란의 시작은 경남 거제시에서 분양된 한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교보생명 자회사인 교보자산신탁이 사업을 총괄하고, 지방 건설사 유림E&C가 시공을 맡았다. 공사 과정에서 자재비와 인건비가 급등하자 양측은 추가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지만, 준공 직전 교보신탁이 입장을 바꾸며 갈등이 폭발했다.
신탁사는 공사비 전액을 시공사에 떠넘겼고, 그 결과 수십억 원의 부담을 짊어진 유림E&C와 50여 개 협력업체가 줄줄이 자금난에 빠졌다. 하도급 대금 체불과 인건비 연체로 현장은 부도 위험까지 치달았다. “신탁사가 우월적 지위를 무기로 중소 건설사에 모든 리스크를 떠넘겼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국감 무대에 서게 된 신창재 회장
이번 사건의 성격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증인 채택 과정이었다. 국토교통위원회는 당초 교보자산신탁 대표와 신창재 회장을 동시에 불러들이려 했으나, 최종 명단에는 모기업 수장인 신 회장만 남았다. 정치권은 이를 “계열사 문제를 넘어 그룹 차원의 책임 구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감 증인 명단에는 GS건설, 대우건설, DL그룹, 현대건설 등 굵직한 건설사 CEO들도 나란히 올랐다. 하지만 금융계열 신탁사 대표가 아닌 교보생명 회장이 불려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의 무게는 남다르다. 단순한 건설 분쟁이 아닌, 금융그룹 지배구조와 책임 회피 문제까지 비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죽전 현장의 ‘용역 점거 사태’
문제는 거제 현장에서만 불거진 게 아니다. 경기도 용인의 ‘죽전테라스앤139’ 주거단지에서는 교보자산신탁이 불법 용역을 동원해 현장을 장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입주민들과 시행사 보정PJT 측 주장에 따르면, 신탁사는 불과 보름 사이 10억 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50여 명의 용역을 고용했다. 이들은 새벽 시간대 주민들이 잠든 사이 관리사무소와 상가, 통로를 기습 점거했고, 주민들은 여성과 아동까지 포함해 극도의 불안에 시달렸다. 일부 상가는 영업이 중단됐고, 피해는 지역 상권 전반으로 확산됐다.
시행사 측은 “배임, 주거침입, 업무방해, 재물손괴 등 중대한 불법이 자행됐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현행범 체포나 강제 해산에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대기업 신탁사가 법 위에 군림한다”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책임은 외면, 피해는 현장 몫”
교보자산신탁은 뒤늦게 일부 공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과 시행사 측은 이를 ‘책임 회피용 보여주기’로 규정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10년 동안 준비한 단지가 부실시공과 준공 지연으로 무너졌는데, 신탁사는 형식적인 보수만 하며 책임을 피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법조계와 건설업계에서는 공통적으로 “신탁사가 가진 구조적 권한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책임준공 구조에서 신탁사는 공정 관리와 자금 집행의 키를 쥐고 있으면서도,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모든 부담을 시공사·시행사·협력업체에 떠넘길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정치권과 사회의 시선
국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계약 다툼이 아닌 “금융–건설 권력 불균형의 전형적인 사례”로 바라본다. 금융사 계열 신탁사가 ‘갑’의 지위를 앞세워 지방 중소 건설사와 입주민을 압박하고,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했다는 비판은 국감장에서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입주민들과 시행사는 공동 성명을 통해 “대기업 신탁사의 횡포와 이를 방치한 공권력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며 “국민 앞에서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이는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지역 경제를 짓밟은 구조적 문제라는 호소다.
남겨진 질문
결국 이번 국감은 교보생명과 같은 대형 금융그룹이 신탁사업을 통해 행사하는 권한이 어디까지 정당한지, 그리고 그 권한이 지방 건설사와 협력업체, 입주민들에게 연쇄적 피해를 주는 구조가 공정한지를 따지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신탁사가 건설 현장에서 책임을 외면하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사회와 서민 경제로 이어진다. 신창재 회장이 국회 증언대에서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그리고 정치권과 사법 당국이 이번 사태를 통해 어떤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지가 향후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