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수주·안전 부실…주민·노동자 모두의 삶을 위협한다

[뉴스인] 조진성 기자 = 전북 전주시 완산구 인봉북로 일원에서 진행 중인 기자촌 주택재정비 정비사업이 지역사회의 뭇매를 맞고 있다. 사업을 맡은 포스코건설이 저가 수주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하청업체들이 안전을 뒷전으로 내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주민들은 소음과 먼지, 교통 혼잡으로 “사는 게 고통”이라 호소하고,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이 무법지대”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새벽 4시의 소음…“사는 게 지옥 같다”
주민 김모(63) 씨는 “새벽 4~5시만 되면 덤프와 포크레인 소리로 집안이 들썩인다”며 “아이와 노인이 함께 사는데 단잠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자촌 일대 주민 다수는 장기간 이어지는 소음과 진동, 먼지에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호소한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안전에도 직결된다. 출입구 관리가 부실해 비산먼지가 무방비로 퍼지고 있으며, 좁은 골목길에는 신호수조차 배치되지 않아 교통체증은 물론 난폭 운전 차량과 주민이 충돌할 뻔한 상황도 빈번히 발생한다.

◇관리 사각지대, “무법천지 될까 두렵다”
추석 연휴 이후 불법 고용된 인력이 대거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주민 불안은 더 커졌다. 한 주민은 “이미 현장이 통제되지 않아 불안한데, 명절 이후 불법 인력까지 들어오면 동네가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실제로 일부 현장에서는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고소작업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공사 차량의 불법 주정차, 통행 불편, 안전 미흡 등은 모두 주민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다.
◇노동자의 처우는 여전히 뒷전
재개발 현장의 또 다른 피해자는 건설노동자들이다. 한국노총 전국섬유건설산업노동조합 박세훈 총괄본부장은 “저가 수주로 인한 비용 절감 압박은 곧바로 노동자들의 안전과 처우 악화로 이어진다”며 “이윤만 좇는 대형 건설사의 태도가 계속된다면 또다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국내 건설현장 사망사고는 매년 수백 건에 이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전문가 “안전·주민권익을 비용 아닌 투자로 봐야”
전문가들은 저가 수주 경쟁이 구조적으로 문제를 키운다고 지적한다. 건설정책 전문가는 “낮은 공사비로 따낸 사업은 결국 안전관리와 주민 보호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며 “안전과 주민권익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자체와 발주처의 책임 있는 관리·감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발주 단계부터 공사 과정, 사후 관리까지 공공이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면 ‘재개발=주민 피해’라는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개발, 누구를 위한 것인가
기자촌 재정비 사업은 노후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 가치 제고를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 진행 상황은 오히려 주민 삶을 위협하고, 노동자의 안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노총 건설노조는 이번 사태를 규탄하며, 포스코건설의 즉각적인 안전대책 마련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했다. 주민들 역시 “정비사업의 본래 취지가 회복되려면, 지금 당장 안전과 생활권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개발은 도시를 바꾸는 일이자 세대의 삶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전주 기자촌 현장에서는 도시의 미래가 아니라 주민과 노동자의 현재가 무너지고 있다. ‘개발의 속도’보다 ‘사람의 안전’을 우선하는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