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에 대한 요구, 정수필터 산업을 키우다

[편집자주] 깨끗한 물은 인류가 누려야 할 기본권이자, 건강과 직결된 필수 자원입니다. 그러나 미세플라스틱, 중금속, 신종 유기화합물 등 예측하기 어려운 오염물질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수돗물 안전에 대한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수필터는 단순한 가정용 기기를 넘어 환경, 산업, 의료, 나아가 국가 안보까지 아우르는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본지는 ‘정수필터와 환경’ 시리즈를 통해 정수필터 기술의 진화와 한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과제와 기회를 조명합니다. 수돗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또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물 환경을 물려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뉴스인] 조진성 기자 = 수돗물은 인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자원이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돗물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미세플라스틱, 중금속, 신종 유기화합물 등 다양한 오염 물질이 수돗물 속에서 발견되면서 소비자 불안은 커졌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정수필터는 단순한 ‘부가장치’를 넘어 국민 건강과 직결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정수필터는 물속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장치다. 초기에는 녹물 제거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세균, 바이러스, 미세플라스틱까지 차단할 수 있는 정밀 여과 기술로 발전했다. 이는 단순히 가정용 정수기의 영역을 넘어 산업, 의료, 환경 분야로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 기존 수돗물 처리 시스템의 한계와 불신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은 이미 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수장에서 걸러진 물이 가정의 수도꼭지에 도달하기까지는 긴 과정이 존재한다. 노후된 상수도관에서 녹물이 발생하거나, 배수지 관리 미흡으로 세균이 번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2019년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는 정수 시스템과 배관 관리가 불안전하면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당시 주민들은 수돗물 사용을 꺼리고 생수를 사먹는 등 불편을 겪었으며, 이후 정수필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소비자들은 ‘깨끗한 물은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라는 믿음이 흔들리자, 각 가정에서 자구책으로 정수필터를 찾게 된 것이다.

◇ 정수필터 기술, 어디까지 왔나
오늘날 정수필터 기술은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첫째, 물리적 여과다. 세라믹 필터, 섬유 필터 등을 통해 미세한 입자와 녹물, 모래 등을 걸러낸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가성비가 높아 여전히 널리 사용된다.
둘째, 활성탄 필터다. 염소 냄새, 잔류 농약, 일부 유기물질을 흡착해 물맛을 개선한다. ‘정수기 물은 맛이 다르다’는 소비자 경험은 대부분 이 활성탄 필터의 효과에서 비롯된다.
셋째, 역삼투압(RO) 방식이다. 반투과성 멤브레인을 통해 물 분자만 통과시키는 고도 여과 기술로, 중금속, 세균, 바이러스까지 차단 가능하다. 다만 비용이 높고 필터 교체 주기가 짧은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넷째, 차세대 나노필터와 복합 필터다. 최근 연구자들은 나노입자 등을 활용한 나노소재 기반 필터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 필터는 초미세 오염물까지 걸러내면서도 물의 미네랄 성분은 유지할 수 있어, 기존 정수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한다.
◇ 미세플라스틱과 신종 오염물, 새로운 도전 과제
정수필터 기술 진화의 배경에는 ‘신종 오염물질’의 등장도 한몫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식수와 환경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해 기존 정수 시스템으로는 완벽히 걸러내기 어렵다.
또한 의약품 잔류물, 합성 화학물질 같은 신종 오염물질 역시 수돗물 속에서 검출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기존 정수처리와 필터 기술로는 완벽히 대응하기 힘든 영역으로,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 친환경과 순환경제, 필터 산업의 과제
정수필터가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한편, 필터 자체가 환경 문제를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플라스틱 소재 필터는 사용 후 폐기 시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킬 수 있고, 교체 주기가 짧아 다량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제조업계는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소재 필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옥수수 전분 등 생분해성 소재를 활용하거나, 필터 재생·재활용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화되는 추세에서 정수필터 산업도 ‘친환경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 산업·의료 분야로 확장되는 활용
정수필터는 단순히 가정용을 넘어 산업과 의료 분야에서도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는 극도로 순수한 초순수가 필요해, 나노 단위의 불순물까지 제거하는 정수 기술이 필수다. 또한 병원에서는 환자의 면역 안전을 위해 세균과 바이러스가 완전히 제거된 물이 필요하다.
캠핑, 재난 대비용 휴대용 정수필터도 성장 시장이다. 깨끗한 식수 확보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소형 정수필터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국제 구호 활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수필터 기술이 인류 보건안보의 필수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전문가들의 시각과 향후 전망
환경전문가들은 “정수필터는 이제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수자원 오염 위험이 커지는 만큼, 정수필터는 향후 물 안전 보장을 위한 핵심 기술로 부상할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의존보다는 올바른 사용과 관리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수필터를 제때 교체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균 번식의 온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필터 제품의 안전성과 성능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인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깨끗한 물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말처럼, 수돗물 안전은 사회 전체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정수필터 기술의 진화는 단순히 한 가정의 편리함을 넘어, 국가적 환경안보와 미래 세대의 건강까지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앞으로 정수필터 산업이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물 환경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