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활용 PC로 살아나는 작은도서관들… 정보격차 해소의 희망
생활권 밀착형 정보 허브 '작은도서관'의 숨은 고민

[뉴스인] 조진성 기자 = 서울 강동구 상상마루 작은도서관.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이곳에서 최근까지 4대의 컴퓨터 중 2대가 고장 나 있었다. 주민들이 온라인 자료를 검색하거나 정보를 찾는 데 큰 불편을 겪고 있었지만, 운영 예산 부족으로 새 장비 구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곳의 사정은 전국 작은도서관들의 축소판이다.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 친화적 도서관문화의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작은도서관은 도서관법에서 공공도서관의 한 유형으로 정의된다. "접근성이 용이한 생활친화적 소규모 문화공간으로서 주로 독서 및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가 형성되는 도서관"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작은도서관은 3951개다. 이 중 공립도서관 894개(22.6%), 사립도서관 3057개(77.4%)로 대부분이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사립도서관이다. 2010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3394개 중 2173개(65%)가 시설·인력·장서 등의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나타났다.
◇"컴퓨터가 없어서 검색도 못해요"
정보취약계층에게 작은도서관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2022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76.2%에 불과하다.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로 가정했을 때 장애인 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82.8%이고 고령층은 70.7%, 저소득층은 96.1%, 농어민은 79.5%에 그친다.
강동구 상상마루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70대 김모씨는 "요즘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있는데, 도서관 컴퓨터가 고장 나면 갈 곳이 없다"며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다 하지만, 우리는 큰 화면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저소득층, 미개발 지역, 노인 등 일부 그룹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거나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에서 작은도서관의 컴퓨터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정보 접근권의 상징이다.
◇새활용 컴퓨터,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이사장 김영배)의 새활용 컴퓨터 기부는 주목받을 만하다. 지난 5월 상상마루 작은도서관에 새활용 컴퓨터 2대를 기부한 이 사업은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정보 접근성 확대와 환경을 고려한 자원순환형 기부 모델 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새활용 컴퓨터'란 불용 컴퓨터를 기부받아 정밀 점검, 부품 교체, 데이터 삭제, 소프트웨어 재설치 등 정비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탄생시킨 디지털 기기다. 기존 장비의 수명을 연장하고 폐기 직전의 자원을 지역사회의 공공 자산으로 전환하는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환경과 사회, 두 가치를 잇는 다리
새활용 컴퓨터 기부의 의미는 단순한 기기 지원을 넘어선다. 우선 환경적 가치가 크다. 전자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다. 매년 버려지는 수많은 컴퓨터가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정보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요건으로는, 모든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편적 정보 서비스 확대, 인터넷 접속비용 및 재정지원을 통한 정보접근능력 강화, 교육 및 인식의 제고를 통한 정보이용능력 향상 등이 필요한데, 새활용 컴퓨터 기부는 이 중 정보 접근성 확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경제적 효과도 있다. 작은도서관들이 새 컴퓨터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그 예산을 도서 구입이나 프로그램 운영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작은도서관의 숨은 역할, 재조명이 필요한 때
작은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작은도서관 발전을 위한 기본방향계획'에서는 시설 조성시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우선 선정대상으로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공공도서관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문화소외 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적 측면을 우선 고려한 것이다.
실제로 작은도서관은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거점 역할을 한다. 주민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며, 어르신들이 디지털 기기를 배우는 교육장이기도 하다.
상상마루 작은도서관 관계자는 "새 컴퓨터를 받고 나서 이용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특히 어르신들이 온라인 민원 신청이나 은행 업무를 배우려고 많이 오신다"고 말했다.
◇새활용 컴퓨터 도서관 조성 운동의 확산 기대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김영배 이사장은 "새활용 컴퓨터는 단순한 기기 전달이 아닌, 디지털 불평등 해소와 자원순환이라는 두 가지 시대적 과제에 동시에 응답하는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더 많은 기관과 기업이 참여해 전국의 작은도서관과 정보복지 시설에 희망을 전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의 복지관(315개소)·주민센터(189개소)·도서관(100개소) 등 총 911개소의 '디지털배움터'를 운영하는 정부의 디지털역량교육 사업과도 맞물려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저렴한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의 제공, 재활용 및 재분배, 대중교통이나 공공 장소에서의 컴퓨터 액세스 등을 통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이 디지털 격차 해소의 핵심인만큼, 새활용 컴퓨터 기부 운동의 확산은 매우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디지털 복지의 모델
새활용 컴퓨터 기부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속가능성때문이다.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순환형 모델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또한 참여형 모델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불용 컴퓨터를 기부하고, 기술 봉사자들이 정비 과정에 참여하며, 작은도서관이 이를 활용해 지역사회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다.
재단은 새활용 컴퓨터 기부 모델 확산을 통해 디지털 환경 개선, 정보 접근권 확대, 환경 보호,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다층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며, 지속가능한 디지털 복지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 나갈 예정이다.
◇작은 실천이 만드는 큰 변화
버려질 뻔한 컴퓨터 한 대가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작은도서관의 새활용 컴퓨터 앞에서 처음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할머니, 온라인으로 숙제를 하는 아이들, 취업 정보를 검색하는 청년들. 이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디지털 포용사회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디지털 격차의 해소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다양하다. 정보 접근성의 평등화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고, 지식과 정보의 균형 있는 배포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새활용 컴퓨터 도서관 조성 운동은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이제 더 많은 기업과 기관, 시민들이 이 운동에 동참할 때다. 버려질 컴퓨터 한 대가 누군가의 꿈을 키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새활용 컴퓨터 도서관 조성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