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김효헌 =2025년, 영국은 군사 전략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고반 조선소에서 전략적 방위 검토(Strategic Defence Review, SDR)를 발표하며, 향후 10년 안에 영국을 “전투 준비가 된, 갑옷을 두른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정책의 조정이 아닌, 국가 안보 전반에 걸친 철학적 재설정을 담고 있는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SDR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병력 감축이 아닌 병력 확충과 기술 중심의 현대화가 선택되었다는 점이다. 정규군 병력은 기존 73,000명에서 76,000명으로 늘어나며, 예비군과 전략 예비군 체계는 냉전 시대처럼 되살아난다. 이는 영국이 단순한 위기 대응 능력을 넘어, 전면전에 대비할 수 있는 군사력 기반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술 투자와도 연결된다. 전체 국방 예산 중 50억 파운드 이상이 자율 시스템과 첨단 무기에 투입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드론, 로봇 등을 포함한 자율 무기 체계에 40억 파운드, 그리고 고출력 지향성 에너지 무기, 즉 레이저 무기 개발에 10억 파운드가 투입된다. 그 대표작이 바로 영국산 고출력 레이저 무기인 **‘드래곤파이어(DragonFire)’**다. 이는 2027년 영국 해군의 구축함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며, 유럽 국가로서는 최초다.

또한 공군과 해군의 전력 강화 계획도 대대적이다. F-35 전투기에 미국산 핵폭탄(B61-12)을 장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으며, 자체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 템페스트(Tempest)도 장기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해군은 미국·호주와의 오커스(AUKUS) 협정을 바탕으로 공격형 핵잠수함 최대 12척을 도입할 방침이다. 여기에 전국적인 탄약 공장 건설, 민방위 체계로서의 ‘홈가드(Home Guard)’ 재창설까지 포함되며, 종합적인 군사 전환 계획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SDR이 실제로는 ‘희망 목록(wish list)’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발표된 사업 대부분은 아직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으며, 동시에 추진하려면 기존 장비나 인력에서 상당한 희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규군 증원과 동시에 첨단 무기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은, 현실적 재정 구조 내에서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스타머 총리는 **‘국방 배당금(defence dividend)’**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군사 투자가 일자리와 산업 성장으로 이어지며 결국 국민 전체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개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구체적인 예산, 세부 산업 계획, 그리고 국민적 합의 없이 던져진 개념이라는 점에서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략적 방향성의 부재다. 영국이 미국 중심의 안보 체계에 더 기댈 것인지, 아니면 유럽 국가들과의 방위 협력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지 않다. 유럽과의 방위 산업 협력이 거론되지만 실질적 협정은 부재하며, 고급 무기 대부분은 여전히 미국에서 수입하는 현실이다. 자주적 안보 전략보다는 전통적 동맹에의 의존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항공모함 운영의 현실도 그 문제를 드러낸다. 영국 해군의 항모는 낮은 가동률과 제한된 전투기 운용 능력으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이를 드론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아이디어 역시 명확한 실행 계획은 없는 상태다. 기술의 중심이 무인기, 자동화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은 여전히 유인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미래의 전장을 과거의 틀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국제 안보 환경은 이미 크게 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은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 있으며, 독일과 프랑스, 북유럽 국가들은 NATO 및 유럽연합 안보 체계를 재편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영국은 어느 쪽에도 확실히 자리잡지 못한 채, 전략적 모호성 속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SDR이 단순한 계획서가 아닌 실제 전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다. 정치적 상징성과 야심찬 선언만으로는 군사력을 구성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예산과 장기적 전략, 산업 기반, 그리고 국민적 지지다. 영국이 진정으로 “전투 준비된 국가”로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의 용기,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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