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에 짓눌린 주거비 부담, 자녀를 돕는 부모 늘어… 한국의 '영끌·부모 찬스'와 닮은꼴

[뉴스인] 김효헌 =영국의 젊은 주택 소유자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주택 대출 상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부모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부모 찬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현상과 맞닿아 있어, 양국 모두에서 세대 간 자산 격차와 주거 불평등 문제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소피(34세)와 칼(33세) 부부는 영국 서머싯주 웨스턴-슈퍼-메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부모다. 그들은 최근 2년 고정 주택 대출 계약이 종료되면서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기존에는 2.08%의 금리로 월 714파운드를 내고 있었지만, 계약 종료 후에는 3.78%로 인상되면서 상환액이 740파운드로 증가했다. 그나마도 상환 기간을 28년에서 40년으로 늘리는 고육지책 끝에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소피와 칼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자녀 양육에 필요한 방과 후 돌봄 비용, 방학 중 홀리데이 클럽 비용, 캠프 비용까지 도움을 받고 있으며, “부모의 지원 없이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가정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자산관리회사 솔터스(Saltus)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투자 가능한 자산이 25만 파운드 이상인 부모의 23%가 자녀의 모기지 상환을 돕고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상당수는 자신의 연금 기여금을 줄이거나, 자산을 매각해 자녀를 지원하고 있었다. 자산이 100만 파운드 이상인 상위층 부모 중에서는 자녀 대출금을 돕는 비율이 2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신(新) 엄마 아빠 은행’이라고 지칭하며, 단순히 주택 구입 시 보증금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매달 생활비와 대출금 상환까지 부모 세대가 떠안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한국에서도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고 금리가 상승하면서 젊은 세대가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통계청과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세 이하의 주택 증여 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증여액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부모의 자산을 이용해 ‘현금 부자’로 위장하여 아파트를 구입하는 이른바 ‘부모 찬스’가 일반화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양국 모두에서 이러한 지원은 부모의 자산이 충분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므로, 결과적으로 세대 간·계층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부모의 자산이 없는 젊은 세대는 고금리와 고주거비에 직면해 내 집 마련은커녕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솔터스 관계자는 “예전에는 자녀들이 주택 구입 시 보증금을 지원받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월별 생활비를 감당하는 데까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해졌다”며 “이는 경제 구조가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4.5%에서 5%로 인상했으며, 고정금리 계약이 만료되는 약 200만 명의 주택 소유자들이 당장 영향을 받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곧 은행의 표준 변동 금리(SVR)로 전환되며, 이자율은 5%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8년 이후 최고치다. 한국 역시 기준금리는 다소 낮지만, 실질 체감 금리는 6% 이상인 경우가 많으며, 고정금리 만료 후 변동금리 전환 시 월 상환액이 두 배 가까이 오르는 사례도 빈번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중산층 가정마저 무너지고 사회 전체의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한국의 경우 ‘청년 주택’,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대상 금융 상품이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수준인지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양국의 사례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젊은 세대의 주거 안정은 이제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이며, 정책적 개입 없이는 세대 간 불평등이 더욱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 찬스’가 아닌 ‘국가 찬스’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