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정영훈 여행전문 칼럼니스트 = 유럽의 어느 날, 다시 네덜란드 땅을 밟았다. 1년 만에 다시 마주한 이 나라는 여전히 바람과 물의 나라로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네덜란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징은 단연 풍차다.

이어서 히딩크와 축구, 자전거 천국, 세계 최고 평균 신장을 자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조선시대의 ‘하멜 표류기’로 연결되는 역사까지... 이 모든 이미지 속에서도, 풍차는 이 나라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임이 틀림없다.

이번 여정의 목적지는 ‘풍차마을’로 널리 알려진 킨데르데이크(Kinderdijk). 암스테르담 근교의 잔세스칸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양대 풍차 명소로 손꼽히는 이곳은 로테르담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 크루즈에서 내릴 때는 우중충한 비가 내려 걱정스러웠으나, 킨데르데이크에 도착하자 마법처럼 하늘이 걷히고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꼬마 제방’을 뜻하는 킨데르데이크는, 단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아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서 살아온 네덜란드인들의 생존 기술이 집약된 현장이다. 풍차는 단순한 전원 풍경이 아닌, 물을 퍼올려 홍수와 해일로부터 국토를 지키는 배수펌프의 역할을 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풍차가 곡물을 빻는 도구였다면, 네덜란드에서 풍차는 곧 ‘생존의 수단’이자 ‘기술의 정수’였던 것이다.

지금 이곳에는 총 18개의 전통 풍차가 남아 있으며, 네덜란드 최대의 풍차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지금은 그 본래의 기능은 멈추었지만, 내부는 여전히 가동 가능한 상태로 철저하게 보존되고 있다.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비 온 뒤 더욱 맑아진 공기 속에서 바라본 풍차와 수로,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과 초록 들판, 여기에 아직 겨울의 흔적을 남긴 갈대가 어우러지며 이곳만의 목가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로 양옆의 초지엔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청둥오리를 비롯한 새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세상의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가장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 풍경 속에서 평화를 마주했다. 관광객들의 얼굴도 모두 환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연출해낸 이 풍경은,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진실된 위로와 선물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풍차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기술의 기념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배운다.

◇정영훈 여행전문가 프로필

한화경제연구원 이코노미스트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
한화투자증권 법인금융본부장(상무)
현 (주)크루즈나라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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