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옵션 평가 또 미뤄져… 수백억 대 분쟁에 시간 끄는 신창재 회장 전략?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왼쪽)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왼쪽)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뉴스인] 조진성 기자 =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또 한 번 꼬였다. EY한영 회계법인이 갑작스럽게 교보생명의 주식 평가 업무에서 손을 뗀 것이다. 이로 인해 수년간 끌어온 풋옵션 분쟁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졌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EY한영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요청한 풋옵션 가격 산정을 위한 가치평가 계약을 최근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대신 EY한영은 교보생명의 '지정감사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동일한 회계법인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 계약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행위다.

이번 계약 해지는 단순한 평가 철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 회장이 수년간 대립해온 재무적 투자자(FI)들과의 지분 정리 작업이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앞서 신 회장에게 30일 내 평가기관을 선정하라는 중재 판정을 내린 바 있으며, 이 기한을 어기면 하루 20만 달러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EY한영이 중도 하차하면서 해당 중재 절차도 삐걱거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 측이 고의로 평가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최근 FI 중 일부 지분을 직접 매입하거나, 제3자를 통한 우호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2월엔 어펄마캐피탈로부터 지분 5.33%를 인수했고, 3월에는 어피니티 및 GIC가 보유한 지분 13.55%를 SBI그룹 등으로 넘겨 우군 재편에 성공했다.

남은 과제는 어피니티 컨소시엄(IMM·EQT)이 보유 중인 10.46%의 지분이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시간 벌기를 통해 이 지분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 교보생명 가치를 평가할 회계법인이 등장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회계법인들은 교보생명의 FI들과 긴밀한 거래 관계를 맺고 있어, 중립적 평가기관으로 나서길 꺼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10년 넘게 이어진 분쟁에 피로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신속한 엑시트를 원하고 있다”며 “이런 지연 상황이 신 회장에게 전략적 유리함을 안겨주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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