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라시아 제국 건설을 위한 푸틴의 출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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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 김태현 기자 = 러우전쟁으로 인해 급박하게 변해가는 세계 정세를 보며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 한 가지는 과연 모스크바가 계속해서 러시아의 수도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하는 의문이다. 모스크바는 유럽과 근동의 중간 지점에 있어 지리적 입지가 매우 좋기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이 아닌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밀접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지정학적, 지경학적 무게 중심을 아시아에 두게 되면 모스크바의 수도로서의 기능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나토의 위협으로부터 보다 더 안전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중국이나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 가까운 시베리아 지역의 예카테린부르크 같은 곳으로 천도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이는 러시아가 향후 어떤 비전과 로드맵을 가지고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비하고 자국의 미래를 디자인하느냐에 달려 있는 선택이겠지만, 이미 극동 개발을 통해 유럽 일변도의 경제 교역 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가 발전의 비전을 천명한 전례도 있는 만큼 수도를 아시아와 가까운 지역으로 옮긴다는 생각은 불가능한 가정도 아닐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우려 되는 점은 서방과의 관계가 냉각되고 친중 노선이 고착화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고, 특히 중국과의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 영토가 중국인들과 중국 경제에 의해 잠식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러시아 정부나 국민 역시 이를 모르지는 않겠지만, 국제 정세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중국과의 파트너십 강화는 러시아에 있어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는 많은 러시아 현지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 있는데, 생각보다도 빨리 러시아인들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점점 더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거나 최소한 호의적인 쪽으로 애써 정당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제적인 궁핍이나 편리의 결여보다 더 힘든 것은 불확실한 미래와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우울감과 좌절감일 것이다. 국민이 불행하고 권력층만 행복한 나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민중이 희망을 품을 수 있고 현실에 좌절하지 않을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 진정으로 행복한 국가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지금의 러시아는 너무도 반대되는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거 같아 개인적인 걱정이 크다. 에따 로씨야!(эта россия!, 이게 러시아야!). 러시아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보통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들이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블랙 유머처럼 하는 말인데, 요즘은 부당한 권력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말엔 사실 러시아 민중의 뿌리 깊은 좌절과 냉소가 함의되어 있다. 피의 혁명을 통해 전제 군주를 축출하고, 이상 사회라고 여겼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오랜 시간 철권통치와 특유의 국가주의에 길들여진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특별히 나빠지지 않는 한 부패한 권력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적극적인 저항을 표출하지 않고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특히 러시아는 워낙 광대한 영토를 관리해야 하고, 사실상 흑인을 제외하면 지구상의 모든 인종이 유라시아 지역에 걸친 광활한 영토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 온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제적인 통제와 통치가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요악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자신들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했던 서구 세력과 유럽-아시아에 걸친 모든 국경에서 직접 마주하고 있는 탓에,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국가와 영토를 보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굳건한 정부에 대한 요구는 늘 존재해 왔고, 이는 자국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암묵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그들이 푸틴을 싫어하지만 그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오히려 푸틴의 갑작스런 유고시 닥칠 내부적 혼란과 내전 사태를 걱정하고 있으며, 이런 최악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불만스럽더라도 현상 유지가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나라 러시아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아마도 바이든, 푸틴, 젤렌스키는 적절한 선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권력을 지키는 선에서 지리한 전쟁을 마무리하고, 지역 분쟁의 형태로 이념 갈등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러시아는 나란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고, 특히 푸틴의 입장에선 적절한 시점에 일방적인 승리를 선언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시키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 지도가 유럽에 대변을 지리고 시베리아에 ‘퍽큐’를 날리며 극동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내달리는 말과 같다는 러시아인들의 농담처럼, ‘유럽으로의 창’을 꿈꾸었던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는 이제 그 창문을 닫고, 자의든 타의든 정반대 방향의 극동을 향해 창을 열고 새로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푸틴은 2가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첫째는 중국에 자국의 경제가 종속되는 경제 식민지화에 대한 우려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서방의 재제가 계속된다면,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2차 전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러시아는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밀착을 더욱 더 강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에 비해 첨단 산업 분야의 기술력이 현저히 뒤처지고 인구가 극도로 적은 러시아는 중국의 강력한 정치경제적 영향 하에서 중국의 눈치만 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석유 가스 등의 풍부한 천연 자원을 레버리지 삼을 수 있겠지만, 모든 부분들이 친환경으로 전환되는 대세 속에서 과연 이와 같은 전략이 얼마나 오래 먹힐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앞서도 언급한 수도 이전에 관한 문제이다. 표트르 대제는 강력한 서구화와 근대화의 기치 하에 유럽을 모방한 계획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 이름마저 러시아어가 아닌 스웨덴어(상트)와 독일어(페테르부르크)가 결합된 외래어로 정한 것만 봐도, 유럽화에 대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유럽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 지역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경이 모두 닫힌 상태이며, 유럽에서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발트 3국은 물론 중립을 표방했던 핀란드, 스웨덴마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며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결국 러시아 입장에선 자신들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유럽과의 단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더욱 가까워진 전선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고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수도 이전의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꼭 가까운 미래가 아니더라도,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고 서방과의 단절이 고착화된다면, 러시아는 흑해 연안이나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시베리아 그리고 중국 몽골 등이 가까운 극등 지역 등에서 국제 지역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이 경우 서방으로부터는 멀지만 러시아에 호의적인 중국 인도 터키는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가까운 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한 도시가 수도로서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게 된다. 더욱이 재제가 계속돼 해외 시장이 줄면 당연히 내수를 키워야 하는데,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중앙에 위치하며 자국에 호의적인 국가들과 가까이 위치하고, 동서남북의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겨울이 길어 땅이 다 얼어 버리는 극한의 추운 날씨가 장애라면 장애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뭐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푸틴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난 이런 생각을 러시아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 본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국가 전략적인 측면에서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수도를 이전하고 극동 개발을 가속화한다면 러시아는 새로운 시베리아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중앙아시아와 극동은 물론 카프카스와 흑해 연안까지 개발 붐이 일고, 러시아는 유럽 연합으로 대표되는 자유 진영이 아닌 중국이나 인도, 중앙아시아나 터키, 이란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밀착을 더 강화되고 결국엔 신냉전이 확고하게 고착화될 것임을 의미한다. 수도를 옮기더라도 당연히 민주화와 의미 있는 변화가 진전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와 같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러시아 사람들의 냉소적인 농담처럼 러시아는 지도상으로가 아닌 실제로 유럽에 똥을 지리고 시베리아에서 퍽큐를 날리며 극동을 향해 내달리는 말이 될 지도 모른다.
이는 결코 인류를 위해 바람직한 변화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만 놓고 본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인구 대국, 자원 대국들이 즐비한 권위주의 문화권과의 밀착을 통해 경제 규모를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결과가 도래하도록 러시아를 그냥 놔 두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은 인구의 우위를 앞세워 접경지역에서부터 러시아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갈 것이다. 아니 오히려 국제 관계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러시아의 약점을 틀어 잡고 경제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우위를 앞세워 노골적인 침탈을 강행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는 물론 중앙 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질 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