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만을 위한 화물운송시장 비정상화 방안 재고돼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닷새째인 28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인근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거리행진을 펼치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대상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 2022.11.28/ 사진=[뉴시스]](https://cdn.newsin.co.kr/news/photo/202301/110670_107638_3230.jpg)
[뉴스인] 조진성 기자 =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16일간에 걸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이후 당정은 안전운임제도는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며 사실상 제도 일몰을 기정사실로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정은 제도 3년 연장을 주장하는 야당과 화물연대의 거센 항의를 무마시키기고,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안전운임제를 통한 적정운임의 보장이 아닌, 돌연 화물운송시장의 근본적 개편을 통한 차주권리보호 및 운송시장 정상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화물운송사업자를 가리켜 연일 “거머리 집단”, “중간 빨대”라고 매도하면서 마치 화물운송시장의 근본적 문제점이 운송사업자들인 것처럼 프레임을 씌우고 있어 운송사업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집단운송거부 종료 후 화주, 운송사, 차주, 정부 및 전문가로 구성된 물류산업 발전 협의체를 발족하여 12월 20일부터 총 8차례에 걸친 회의를 개최했다.
해당 회의를 통해 안전운임제를 포함한 화물운송시장의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논의한다는 취지였으나, 회의 운영은 실질적인 논의를 통한 해결방안 도출이 아닌 사실상 이해 주체 간 의견발표에 국한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회의에 참석한 국토부 측 관계자는 별다른 의견표명 없이 청취만 했으며, 마지막 회의인 8회차 회의 말미에 다음 주에 국토부 중간 개선안을 제시하는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8회차 회의 종료 후 불과 5일 뒤인 지난 1월18일에 공청회가 개최됐으며, 회의를 통해 제기된 화주 측 주장이 대거 반영된 개선안이 발표됐다. 사실상 개선안에 대한 정부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회의는 형식상 개최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지난 수십 년간 해결해오지 못한 화물운송시장의 문제는 다양한 이해주체 간 첨예한 대립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단 8차례의 금번 회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고개를 저었다.
◇공청회 내내 이어진 운송사업자와 차주의 불만 표출
실제로 지난달 18일 개최된 공청회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개선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공청회에 참석한 다수의 운수사업자 및 화물차주들은 “화주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게 정부가 생각하는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이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정부가 제시한 개선안이야말로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표본”이라고 거세게 항의하였는데, 패널로 참석한 화주 및 전문가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온갖 야유와 항의가 쏟아져 공청회 진행이 지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정부가 제시한 개선안을 두고 시장 내 이해주체인 운송사업자와 차주가 격렬히 항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제시한 개선안, 즉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화주 입장 대폭 반영,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한 차주 지원 방안 제시, 운송사업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정리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화물운송시장의 정상화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화물운송시장의 비정상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공청회 이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토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실제 내용은 이와 달리 확실한 화주 편들어주기로 안전운임제는 화주 면책 운임제로 개악됐다. 화물운송시장을 개혁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도 담기지 않아서 요란한 빈수레 같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제시된 국토부 개선안 중 대다수의 운송사업자 및 화물차주로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안건을 살펴봄으로써 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전운임제 → 표준운임제로 개편은 사실상 운송시장 퇴보 수순
우선 안전운임제와 관련하여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가이드라인 성격의 표준운임제로 개편하여 화주-운수사간 운임(운송운임)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운수사-차주간 운임(위탁운임)만 강제하여 사실상 화주의 적정운임 지급 의무 및 처벌조항을 삭제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화물연대 이봉주 위원장은 "화주에게 운임을 강제하지 않는데 차주들이 적정운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고,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최진하 상무는 "화주의 우월적 지위에 따른 저운임 상황에서 화주로부터 적정운임을 받지 못하면 운송사가 어떻게 차주에게 법정 위탁운임을 지급하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화주-운수사-차주로 형성된 화물운송시장 구조 하에서 화주가 운수사에게 지급하는 운송운임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진다면, 그 어느 화주가 운수사의 이윤을 위해 참고운임으로 전락한 운송운임 이상의 운임을 지급하겠냐는 것이다.
공청회에 참석한 운송사업자 A씨는 “화물운송시장은 과거부터 화주의 우월적 지위에 따른 최저 입찰로 인해 최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운임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 정부 개선안대로라면 화주는 사실상 운송사업자에게 위탁운임 이하 수준의 운임을 지급할 것이 자명하다. 이로 인한 시장 내 운송사업자와 화물차주 간 갈등이 증가할 것으로 심히 우려스럽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운송사업자 B씨는 “요즘 운수사업자를 마치 범죄자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는 기사가 연일 올라오고 있다. 대한민국 물류 산업 역군의 한축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일을 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거머리, 빨대와 같은 모욕성 발언을 듣다보면 한 회사의 대표로서,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엄청난 자괴감이 들어 괴로운 심정이다. 일부 불법 브로커를 비롯한 극소수의 올바르지 못한 행태를 마치 운송사업자 전체가 그런 것인 마냥 마녀 사냥하는 행태를 부디 멈춰주시길 바란다”고 정부를 비롯한 공청회 참석 패널들을 향해 호소했다.
◇차량등록원부상 소유자를 운송사업자에서 위수탁차주로 변경
개선안 중 운송사업자들이 가장 큰 우려를 나타낸 내용으로, 공청회 당일 화물연합회 최진하 상무는 해당 개선안에 대한 명확한 반대 뜻을 표명하였다. 현행 자동차등록원부상에는 위수탁계약 체결 시 차량의 소유자가 운송사업자로 되어 있고 위수탁차주는 현물출자자로 명시되어 있으나, 국토부는 등록원부상 차량의 소유자를 기존 운송사업자에서 위수탁차주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개선안에 담았다.
최진하 상무는 “자동차등록명의가 위수탁차주로 변경될 경우 기존 운송사업자의 책임 의무로 되어 있는 범칙금, 과태료를 비롯한 행정처분도 차주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화물법상 운송사업자의 책임과 역할이 심각히 훼손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언급했다. 업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해당 개선안이 운송사업자가 적법하게 투자한 사업권을 차주에게 강제 이전시키는 재산권 침해사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운송사업자 C씨는 “개선안대로 된다면 각종 행정업무, 보험업무, 과태료 및 범칙금 등 차량과 관련된 책임과 의무를 차주가 직접 이행해야 하는데, 과연 현 제도보다 더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결론적으로 이러한 내용은 차주의 실질차량에 대한 소유권 강화를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현물출자 의무기재, 차량 양도 시 차주동의의무 강화 등 현행법상 이미 시행되고 있는 부분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행 최소운송의무 및 직접운송의무 지키기도 어려워
국내 화물운송시장 특성상 과당경쟁과 최저입찰제가 만연해 있는 실정이며, 다양한 화물차 종류(일반 카고, 윙바디, 냉장냉동, 탱크로리 등) 및 톤수에 따라 차주들이 운송하기를 선호하는 품목은 특정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수탁 계약을 맺은 운송사업자가 소속 위수탁차주에게 물량을 확보하여 물량 수송을 지시하여도 차주가 이를 거절하는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법상 위수탁차주가 운송을 거부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운송사업자 D씨는 “현재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타 운송사업자의 위수탁차주를 통해 운송하는 배차, 즉 용차를 직접운송으로 인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정보망 이용 실적을 직접운송으로 간주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속 위수탁차주가 위수탁계약을 채결한 운송사업자가 제공하는 물량 수송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의도하는 운송사 본연의 기능 회복 측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지, 단순히 최소운송 및 직접운송 비율만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화주만을 위한 정상화, 화물운송시장은 비정상화의 늪에 더욱 빠지게 될 것
이번 공청회에는 많은 운송사업자 및 화물차주가 참석하여 그들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시장 내 이해주체인 화주, 운수사업자, 차주 중 두 주체는 정부가 제시한 이번 안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와 화주는 시장질서 논리에 맞춰 화물운송시장이 돌아가야 함을 근거로 안전운임제를 표준운임제로 사실상 완화 조치하였으나, 반대로 운송사업자들에게는 시장질서 논리에 반하여 운송기능 회복을 위한 강제 조치를 들이댔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화물차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장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가 주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모순된 행태의 원인은 대체 무엇인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안이 오히려 시장 내 주체를 갈라치기하여 화물운송시장이 더욱 큰 혼란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부는 시간에 쫒겨 급하게 결과물을 도출하려고 하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당사자간 논의를 통한 진정한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지하고, 필요하다면 국회를 설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