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헬스】박생규 기자 = 요즘에는 아무리 높은 사람이 탄 차라도 안에 누가 탔는지 잘 알 수가 없고, 차 번호 등을 외우고 있더라도 간단한 목례로 인사를 한다.

하지만 옛날에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말 잔등 위에서의 예법이 상당히 강조됐다.

말을 타고 출근하다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는 상대방의 지위와 나의 지위를 가늠하여 예의 바르게 처신해야 했다.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승마시의 예법이 다듬어지지 않아 말을 타고 가다 상관을 만나면 무조건 말에서 내려 엎드려 절했다.

하지만 지나친 예법은 오히려 불경하다하여 고려조정에서는 말을 탈 때의 예의바른 행동규범을 정하기 위해 상당한 논란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현종(991년~1031년) 즉위 원년(1009년)에 문무관이 노상에서 만났을 때 행하는 상견례를 정했다.

상견례에 따르면 말을 타고 가다 상관을 만났을 때는 상관의 직급과 자신의 직급의 상대적인 격차에 따라 처신을 다르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종3품관일 경우, 3품관을 만났을 때는 말 위에서 양손을 입까지 올려 목례를 하면 되지만 1품관을 만났을 때는 말에서 내려 보이지 않게 피해야 한다.

그래서 이 말 위에서의 예법을 이른바 '피마식(避馬式)'이라고 한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예법이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엄격한 규범이었다.

피마식은 현종 이후에도 왕의 적자에 대해서 품계에 따라 어떻게 예의를 차릴 것인가, 서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문반과 무반 사이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계속됐다.

또 피마식과는 별도로 조로(朝路 :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가 다니는 길)나 도성 내에서 승려와 벼슬 없는 평민, 천민이 말을 타는 것을 금하였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엄격하게 처벌했다.

충렬왕 8년에는 '평민이 말을 탄 채 대관을 보고도 내리지 않는 자는 그 말을 몰수한다'고 했으며, 13년에는 '중이나 노비 같은 부류가 말을 타고 관리가 다니는 길을 함부로 다니고 행인을 밟아 죽이니 이제부터는 이들을 잡아 들여 죄를 논하고 말은 몰수하여 전목사(소와 말을 담당하는 관청)로 보내겠다. 만일 주인이 잘 가르치지 못했을 때는 노비와 주인도 함께 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예법은 매우 엄격해서 임금이나 벼슬아치가 말을 타고 행차할 때는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조아려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있다 보니 불편하다는 민원이 발생했고 결국 백성들이 편하게 피해 다닐 수 있는 뒷골목인 '피마(避馬)길'을 만들었다.

종로의 피맛골은 바로 이 피마길에서 유래했다.

<자료=한국마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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