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선복 논설위원]
사진=[김선복 논설위원]

[뉴스인] 김선복 논설위원 =모두가 마스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맞이하는 답답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 뒷산에 가벼운 산책을 종종 다니고 있다.

가벼운 산책이라 하지만 사실은 습하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한 발짝 한 발짝 옮겨놓기가 쉽지 않다. 여름 기운이 숲 속에 가득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손부채를 부치며 땀을 조금이라도 식히려 할 때, 눈에 확 들어오는 낯선 광경이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얼핏 보기에 60대 중반의 남자분이 배낭을 메고 큰 삽을 들고 서 계시는 것이다. 조용한 숲 속이라 주변에는 사람들도 없고 단지 나와 직장동료 단 둘이라서 무서움과 두려움이 휙 스치는 것을 숨기려 서둘러 그 남자 앞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빨리 지나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뒤를 돌아보니 어디로 갔는지 그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괜히 섬뜩한 상상을 하면서 마치 벌에 쏘여 어찌 할 줄 모르듯 허둥지둥 대면서 산을 내려왔다.

며칠이 지나 마음이 진정이 되고 바람도 좋아 우린 다시 산으로 산책을 갔다. 무서운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주변을 세세히 살피며 조심조심 걷고 있을 때 또 다시 그 남자분이 삽을 어깨에 메고 주변을 살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린 또 다시 긴장한 채로 그의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고, 한 참 후 다시 돌아보니 역시 그는 사라지고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우린 그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약초를 캐는 사람인가?

아니!

이 언덕 같은 숲에 웬 약초?

약초가 아니라 희귀식물을 찾는 걸까?

등등 나름대로 왜 삽을 들고 다니는 지에 대해 한 참이고 이야기를 하며 산을 내려왔다.

이렇게 여러 번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사이 숲길을 걷는데 숲길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진 곳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급해서 오르내릴 때 쩔쩔매던 길, 쓰러진 나무로 길이 막혀 있던 길, 길이 끊겨 있어 둘레 길을 간혹 놓쳐 산 속을 헤매던 길 들이 한 눈에 봐도 깔끔하고 시원스레 다듬어져 있었다. 그 간 무슨 일이 생겼나? 구청에서 산책로 정비라도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 한 사람이 스치듯 떠오른다.

그래!

아마 모르긴 해도 숲 속에서 괜스레 겁을 먹게 했던 삽을 둘러멘 그 남자가 아닐까?

구청에서 산책로 정비를 했다면 이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을 터.

우린 그 남자의 지난 모습들을 떠올리며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맞다! 맞아! 맞네!

그 분이었네.

그 남자란 호칭이 곧바로 그 분이라고 옮겨 가는 순간이다.

아무도 모르게, 간 혹 다른 사람들의 의심스런 눈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남들의 안전을 위해 삽 한 자루로 이 산책길을 가꾸고 다듬어 놓으신 그 분! 그 알지 못하는 그 분의 깊은 마음이.

누구라도 맘 놓고 산을 올 수 있도록 안전하고 휴식과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숲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분이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묵묵하고 사려 깊은 마음으로 아름답고 고요한 숲길을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신 그 분을 존경한다.

나는 오늘부터 그 분을 숲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불러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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