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의 편자박기.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박생규기자 skpq@newsin.co.kr
【서울=뉴시스헬스】박생규 기자 = 현대의 말들은 야생마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발굽에 편자가 박혀 있다.

편자를 박지 않은 말은 쉽게 발굽이 갈라져 사람이 부리기 어렵다. 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칡(葛)으로 신발 같은 것을 짜서 편자대용으로 썼다.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옛날에는 겨울에 얼음이 얼어 땅이 미끄럽게 되면 칡(葛)으로 말발굽을 싸맸는데 이는 마치 소의 짚신과 같다'고 했다.

편자는 지금의 이란 지방에 있었던 파르티아(B.C.247~A.D.226)왕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경우 철제 편자는 당(618~907년)나라 이후에 사용됐다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 편자는 제철(蹄鐵)이라고 했으나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이 독자적으로 편자를 개발해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편자를 발명한 사람은 바로 조선시대의 문신 윤필상(尹弼商, 1427~1504년)이다.

윤필상은 파평윤씨로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해 승승장구하며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연산군 때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비를 막지 못했다하여 사약을 받고 죽은 인물이다.

성종 10년(1479년)에 윤필상이 건주(建州)의 여진족을 정벌하러 갔을 때 땅이 얼어 미끄럽고 말이 발을 붙이지 못하자 발굽처럼 둥글고 아래가 양갈래로 갈라진 쇳조각을 만들어 발굽 밑에 붙였다.

그 후로 사람들은 윤필상을 본받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쇠를 발굽에 붙이니 먼 길을 가더라도 말이 발굽을 다치지 않으므로 편리하게 여겼다고 한다.

윤필상의 발명품은 칡으로 만든 미끄럼방지 신발을 대신한 것이었으므로 대갈(代葛)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토록 편리한 편자에 대해 반대론자도 없지 않았다. 장자는 일찍이 편자가 말을 부리기에는 편한 것이나 자연적인 생리현상을 거슬러 말을 혹사시켜 빨리 노쇠하게 만든다고 했다.

또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익도 '말에게 물어본다면 편자만큼 말에게 해로운 것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편자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말들의 신발'이 됐으며 윤필상은 우리나라 마정사(馬政史)에서 가장 획기적인 업적을 이룬 인물로 남아있다.

하지만 발해의 유적에서 편자가 출토된 사례가 있어 우리나라 편자의 유래는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자료=한국마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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