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김효헌  = 주민등록증은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소지해야 하는 신분증으로 여겨진다.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또한 신분증 구실을 하지만 선택적으로 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민등록증과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특정 연령이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필자 역시 학창시절, 고등학교 2학년 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기억이 있다. 주민등록증은 어른이 되는 첫 단계라고 여겨졌고, 그땐 왜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발급받기까지 손꼽아 기다렸던 걸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쨌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주민등록증이지만 영국은 이러한 주민등록증이 없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도 이런 필수적인 신분증이 없다.

영국사람들은 주민등록증 대신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관공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많지 않다.

 

우스갯소리로 영국사람들은 관공서에 업무를 보기 위해 가는 것은 평생에 3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하는 출생신고, 성인이 되어 결혼하게 되면 혼인신고, 마지막으로 사망신고를 하러 관공서에 간다. 생각해보면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이 출생신고할 것이고, 본인이 사망했을 때는 자식이나 자식이 없을 땐 지인이 갈 것이고, 결국 본인이 관공서를 찾는 일은 혼인신고 하러 갈 때뿐이다. 요즘은 결혼이 선택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본인이 가는 것은 한 번 혹은 평생 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우리나라 관공서는 출생신고, 매번 이사할 때마다 하는 전출입 신고, 또 각종 증명서 발급 등 다양한 업무 및 서류발급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할 때 사용할 증명서류도 얼마나 많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관공서를 거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주민등록증 제도도, 전출입 신고도 할 필요가 없는 영국에서의 삶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상당히 단출한 편에 속한다. 전출입 신고의 경우 한국에서는 본인이 직접 관공서에 찾아가서 ‘신고’해야 하지만 영국에서는 정부가 주기적으로 해당 건물에 우편물을 보내 거주자를 파악한다. 주소는 은행 계좌를 만들 때 필요하지 관공서에 등록하지는 않는다.

영국에서 신분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때 임시로 존재했다. 전쟁 시기였기 때문에 병사 소집을 위해 인구조사가 진행됐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신분증도 자연스럽게 폐지되었다. 물론 이후에 여러 번 신분증 제도의 도입이 추진되었다. 신분증 도입 법안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5년이다. 보수당의 신분증 도입 시도를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가 저지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분증 제도를 통해 범죄율을 낮출 수 있지만, 제도도입을 위해 수십억의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경찰 인력보강에 투입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2001년 9·11 테러 이후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신분증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2006년에 다시 한번 신분증 제도도입을 추진해서 2008년에 시행을 목적으로 진행했다.

필요 목적은 신분증 도용, 정부 복지 서비스의 남용, 불법 이민, 조직범죄, 테러공격 등을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체정보 신분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뿐만 아니라 당내에서조차 반발이 심해 결국 백지화됐다. 그 이유인즉슨, 신분증이 없어도 신용카드나 여권, 운전면허증 등이 신분증 구실을 하고, 지문과 홍채 정보 기록은 지나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분증 도입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신분증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까지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분증이 비단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 감염자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럽에서는 한국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사망자 수가 지극히 적은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빠른 대처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신분증 제도가 잘 이루어져 있어서 소재파악이 신속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럽 각국에서 우리나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한국의 사례가 본보기가 되었다.

그래서 인지 영국의회에서는 매일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대한민국)를 외쳐댄다. 한국이 코로나 감염자의 역학 조사를 간단하고 신속하게 하는 반면에, 영국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연일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에는 신분증이 따로 없으므로 한국과 같은 빠른 역학 조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5월에 들어서면서 이제 영국은 영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에게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하지만 신분증과 같은 주민등록증이 없으므로 조사가 쉽지 않다. 이 경우 신분증이 없으니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으로 대신 입국자 신분을 밝힐 수 있지만, 그 밖의 경우엔 과연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럴 때는 자신을 어떻게 증명할지 영국사람들도 어려울 때가 많다고 한다.

한 예로 한 영국인이 타국에서 오래 살다가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자신이 온라인으로 거래한 은행에 가서 자신의 카드로 출금을 하려고 하는데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행원에게 자신이 통장의 주인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통장의 주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보충 서류를 제출하고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 같으면 신분증이 있으니 바로 본인 확인이 가능하지만, 영국은 신분증이 없는 관계로 불편한 점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선거인 등록과 투표방법에도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선거를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투표장소로 따라가 봤다. 신분증이 없으니 선거인을 조사하는 게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영국은 성인이 되면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만, 자신이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만 한다. 투표 전에 정부에서 주소지로 누가 살고 있는지를 묻는 편지를 보내고 만약 선거인이 답신으로 누가 살고 있는지를 적어 보내면, 선거인의 주소지로 투표할 장소를 알려 주는 엽서를 보낸다. 선거인은 이 엽서를 가지고 투표소로 가서 엽서를 보여주면 인명부에 적힌 주소지와 이름을 확인하는 것으로 본인 인증이 끝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필자의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가 불가했다. 아직도 과거의 방법대로 우편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과연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영국사람들은 한치 불편함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호 신뢰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지만 과연 얼마나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분증이 없다는 점은 이름도 마음대로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변경 사유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이름을 회수에 제한 없이 바꿀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할 정도로 서류도 간단하다.

 

 

이름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씨도 바꿀 수 있다. 이름과 성씨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조상이 물려준 성씨도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족보가 있어서 자신이 몇 대손인지 알 수도 있는데 그러면 영국은 그런 것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래서 이 대화를 함께한 친구에게 어떻게 성씨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름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대신 성씨를 바꾸기 위해 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즉, 분명한 사유가 있어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를 따르게 되는데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의 성씨에서 원래 본인의 성씨로 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조금은 수긍이 갔다. 한편으로 이것은 영국이니까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이런 영국의 제도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한국은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 위해서 신분증이 있다면, 영국은 개인의 사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분증으로 개인을 규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분증 제도의 장단점으로 먼저, 한국은 신분증 하나로 개인의 정보, 소재파악을 빠르게 할 수 있어서 코로나 사태로 인한 확진자의 동선 파악이 쉽게 이루어져서 코로나의 확산을 막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단점은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도 한 개인의 정보를 다 알 수 있으니 개인정보 유출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장점은 신분증 제도가 없으므로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이번 코로나 사태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개인의 소재파악이 어려워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개인정보 유출문제가 한국만큼 심각하지 않고 사생활이 좀 더 보장된 영국이 더 좋아 보인다.

※PS 그리고 이번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도 2008년부터 이름과 성씨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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