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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헌의 스코틀랜드이야기] 에딘버러 페스티벌 '몽 연'
김효헌 | 승인 2019.09.11 10:51

 

[뉴스인] 김효헌  =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는 매년 8월 한 달간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연다. 정식 명칭은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라고 부르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 예술 축제다.

이 축제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정신을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1947년에 시작됐다.

당시 영국 정부와 에딘버러시의 후원을 받으며 글라인드 번(Glyndebourne)오페라단 행정관이었던 루돌프 빙(Rudolf Bing)과 몇몇 이들이 이 축제를 기획했다.

이렇게 시작된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EIF)은 오페라, 클래식 음악, 연극, 춤, 비주얼 아트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러 나라의 공연 팀을 초청하여 꾸미는 세계 최대의 공연 축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에딘버러가 축제의 도시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보다 약간 먼저 열리는 에딘버러 프린지페스티벌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 페스티벌은 1947년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시작될 당시 초청 받지 못한 공연 팀들이 자생적으로 공연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프린지(fringe)’의 뜻이 ‘주변’인 것처럼 프린지페스티벌은 공식 초청공연으로 이뤄지는 국제페스티벌과는 달리 자유 참가 형식의 공연으로 이뤄지는 일종의 부대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축제 기간 중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밀리터리 타투(Military Tattoo)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퀼트(남성용 치마)를 입은 수백 명의 경기병이 백파이프와 북을 연주하며 군악 퍼레이드를 벌이는 이 공연은 1950년 작은 규모의 부대행사로 시작돼 지금은 수십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주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축제 기간 내내 저녁때마다 고색창연한 에딘버러성 광장에서 진행된다.

이렇게 에딘버러에는 8월 한달간 세 개의 축제가 열린다. 클래식을 주로 하는 국제 페스티벌, 초대받지 못한 팀으로 구성돼 시작된 프린지 페스티벌, 그리고 군악대로 구성된 밀리터리 타투이다. 이때는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에딘버러에 있는 웬만한 장소들은 다 공연장으로 탈바꿈 한다. 교회도 대부분 이때는 공연장으로 빌려주고 대학교도 공연장으로 변한다. 어디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면 다 공연장으로 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축제기간동안 에딘버러에는 사람들이 넘친다고 봐야할 정도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매진이고 전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도 공연을 보기위해 에딘버러에 오는 사람이 많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에딘버러 축제의 성공 사례로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나라 ‘난타’의 주인공 송승환 배우이다. 1999년에 송승환 씨는 정말 모든 것을 걸고 난타를 가지고 에딘버러에 왔다고 했다. 그때 에딘버러에 올 돈이 없어서 1억을 친구에게서 빌려서 왔는데 마침 난타가 성공을 해서 그 비용을 갚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바로 그 난타의 탄생이 이곳 에딘버러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에딘버러 페스티발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 난타로 인해 이제는 좀 알려 진 것 같다.

 필자가 처음 에딘버러에서 공연을 본 것이 ‘몽 연’이라는 공연이었다. 이것은 프린지 페스트벌 공연으로 2007년 에딘버러에 페스티벌기간에 필자가 로얄 마일을 걸어가는데 마침 한국 공연 팀이 거리에서 공연홍보를 하고 있었다. 영어로 막 공연 표를 팔고 있었는데 필자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니까 표를 파는 사람도 놀라면서 ‘어머 한국 사람이세요. 너무 반가워요, 여기서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너무 신기해요’ 하며 서로 어쩔줄 모르고 반가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을 꼭 보러 가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이국 땅에서의 한국 공연이 너무도 반갑고 기대가 되어서 필자는 공연시간에 맞춰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은 우리나라의 연극 공연 장소처럼 작은 공간 이였다. 재목은 '몽 연'. 입장하기 전에 입구에서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반갑고 또 단아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국 아가씨 같아서 말을 걸었더니 자산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캐나다 사람이라면서 영어로 말을 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아까 본 그 아가씨가 무대 한쪽 편에 서서 나래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쩐지 이쁘다 했더니 공연내용을 영어로 해설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당시 안동에서 실제로 무덤에서 나온 미투리와 원이 엄마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크게 회자되었던 이야기를 ‘몽 연'이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국악 형식의 연극이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안동의 어느 무덤에서 발견된 ‘아내의 죽은 남편에 대한 애뜻한 사랑의 편지와 자신의 머리를 잘라 저승길에 신고 갈 미투리를 만들어 관속에 같이 보내면서 꿈에서 만나기를 원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내용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악기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첼로와 바이올린, 해금과 장구, 징 등으로 국악과 양악의 조호가 잘 되었으며 연기자들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보는 내내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필자만 그런 느낌일까 외국인들은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관객들도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해금의 구슬픈 소리가 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연기를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왜 몰랐지 이렇게 좋은 공연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관객들이 찬사를 보냈다. 배우들이 모두 한국어로 말해서 자세히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인데도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며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내가 배우가 된 것처럼 기뻤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비디오 촬영을 하고 싶다며 소감을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내용도 그렇고 한국어로 공연을 해서 과연 괜찮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200프로 만족했다’며 정말 기쁘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나서 다음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영국 전역을 순회공연한고 했다. 표가 다 매진이 돼 있어서 무리 없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공연할 것 같다고 말해 줬다. 너무 좋았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마치 내가 배우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에는 누가 주연 이였는지 모르고 ‘참 연기를 실감나게 잘 한다’ 라고 느꼈는데 지금에 와서야 판소리로 유명한 박애리씨 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몽연’을 보고 싶은데 인터넷 어디에도 ‘몽연’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다시 한 번 이곳 에딘버러에서 몽연을 볼 수 있기를 기대 한다. 처음 본 공연이여서 인지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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