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형작가의 '달의 계곡'

[뉴스인] 김영일 기자 = 낙태와 생명존중 사이의 갈등 속에서 이 소설의 화자 ‘나’는 바람난 어미의 도망으로 할머니에 의해 젖동냥으로 키워진다.

세 살 무렵 할머니의 죽음으로 고모에게 맡겨져 고모 집에서 성장한다. 어디서건 상관없이 내 엄마의 욕을 하며 악을 쓰는 고모를 보며 꼭 한 번은 엄마라는 인물을 만나야겠다는 오기를 품는다.

고모의 집은 안채와 가게채로 구분되어 있다. 안채에는 이북이 고향인 한복을 짓는 한복 할머니와 다방에서 레지로 일하며 살고 있는 금자 언니, 집안의 감초인 월남 아줌마 명섭이네, 엄마를 뺑소니 사고로 읽고 아버지 유재갑 씨와 사는 희수네, 대통령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행방이 묘연해진 안경 쓴 청년과 그가 사라진 후 다음 세입자로 들어온 가수 아저씨 등 여러 군상이 함께 살아가고 있었으며, 가게채에는 굿모닝 만홧가게와 오복상회 고모의 가게가 일렬로 서 있다.

소문난 춤꾼이자 굿모닝 만홧가게 주인 김씨 아저씨는 경희라는 딸과 둘이 살고 있고, 오복 상회 주인 남자인 안씨 아저씨는 ‘씨’가 없어서 아이가 없이 부부끼리 살고 있다. 이렇듯 여러 군상이 모여 살고 있는 고모의 집에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고 ‘나’는 고모의 집안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통해 집단 속에서 살아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우연하게도 ‘어머니날’ 쓴 편지가 교내 게시판에 붙으면서 나는 편지를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난다. 같은 반인 명섭이는 학교에서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편지를 써 오라는 숙제 때문에 내게 편지를 부탁하게 되고, 명섭이는 편지를 써 주는 조건으로 수고비를 준다고 했다. 명섭이에게 써 준 편지가 계기가 되어, 나는 집안사람들의 대필가로 활약하게 되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한편 나는 오빠의 대한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데… 여름 방학 숙제를 하기 위해 오빠와 곤충 채집을 하러 나섰다가, 오빠가 사랑하는 상대가 바로 경희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고모의 집에서 떠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효순 언니가 기찻길에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효순 언니의 죽음을 보면서 경악하다가, 학교 놀이기구에 의해 다치게 되고… ‘간파열’이라는 병명으로 대수술 끝에 소생하는데… 무시험 제도가 도입됐다는 문교부의 발표로 야간진학을 꿈꾸던 꿈마저 무산된다.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고모 곁을 떠나지 못한 나는, 한복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장학금을 내놓고 남은 돈을 내 몫으로 주는 바람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길에 올랐던 나는 귀국을 하고, 어느 날 내가 번역한 외국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번역가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나와 한 여자의 젖을 먹고 자란 영철이가 독신으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영철이와 결혼하기에 이르는데…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맞는다. 혼자 딸아이를 키우며 번역일을 하다가 사진작가인 그를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여행을 떠난 라파스에 있는 협곡 ‘달의 계곡’에서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딸아이를 어떻게든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딸아이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딸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것은 사랑이며 ‘생명’에 대한 책임이라고 나를 가르치고 나선다. 그런 딸아이를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내 어머니의 딸이었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꿈속에서 본 ‘달의 계곡’ 새들의 모습이 바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 한 채 사라진 태아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이 장편소설은 프롤로그나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세상사람들의 삶을 한 편의 연극으로, 영화로 극장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극장과 영화관을 가져다 놓은 책이다. 읽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배우가 되어 있고, 여기도 엿보고 있고, 저기도 엿보고 있다. 또한 여기는 어떨까, 저기는 어떨까 하고 기웃기웃하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이다.

주인공인 ‘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보다 약자라고 해서,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아직 사람의 형체를 갖추지 않은 작은 생명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뤄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꿈꾼다”며, 작가는 세상사람들의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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