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 당시 망보기 아이 '빗개'의 시선으로 본 제주 풍경, 4월 3일 류가헌 개막

▲'빗개' 어리목 (사진=유별남 제공)

[뉴스인] 민경찬 기자 = 제주 출신 사진가 유별남의 사진전 '빗개'가 오는 4월 3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개막한다. 

'빗개'는 1948년 3만여 명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된 제주 4.3 사건을 오늘로 환원한 사진들이다.
  
제주에서는 어린 소년·소녀를 '빗개'라 불렀다. 하지만 1948년 일어난 4.3사건 당시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제주 땅 곳곳에 몸을 숨긴 주민의 은신처를 지키는 망보기 아이들은 아프고 슬픈 '빗개'다.

전시회의 제주 풍경들은, 70년 전 참혹한 학살이 벌어졌던 제주 다랑쉬굴 앞에서, 도틀굴 숲속에서, 정방폭포 물살 뒤에서 망을 보던 소년 '빗개'의 시선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유별남 작가는 지금은 유적으로 분류된 학살 터를 비롯해 '생존 빗개'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장소들의 사계절을 빗개의 시각과 유사한 화각으로 담았다. 바로 그날의 4.3을 오늘로 환원하는 사진들이다.

일찍이 우리 눈에 익은 '아름다운 제주 풍경'들이 어딘지 불안하기도 하고 몰래 숨어서 내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때로는 땅에 납작 엎드려야만 보이는 높이로 돌담은 모서리에 찔릴 듯 너무 가깝고, 갈대의 흔들림은 어떤 기척처럼 수상하다. 

유별남 작가는 EBS의 '세계테마기행', KBS '여섯 시 내 고향' 등 유명 프로그램에서 '별남이'라는 별명으로 친근하고 명랑하게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의 모임 '온빛다큐멘터리'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책으로 선보인 사진들은 주로 해외의 난민과 빈민 아동에 관한 것이거나 여행지 풍광을 담은 회화적인 사진들이었다. 그런 그가 1년여의 작업 기간 끝에 '빗개'라는 사진전으로 대중 앞에 섰다.

▲'빗개' 다랑쉬 (사진=유별남 제공)

유 작가는 "어린 시절, 왜 앞집 할망이 나를 그렇게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는지,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4.3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라며 '빗개'의 작업 동기를 밝혔다.

제주 4.3은 '미 군정기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지금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으로까지 귀결되었지만, 반세기 넘도록 진상규명은커녕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되는 '금칙어'였다.

4.3에 대해 유별남 작가 역시 제대로 들은 기억이 없다. 4.3은 그저 "쉬쉬"하는 어른들의 귀엣말과 한숨, 불안한 눈초리와 움츠린 몸짓으로 그에게 전이됐을 뿐이다. 

제주를 벗어나 뭍에서, 서울 도심에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살았지만 고향이 제주인 그에게 4.3은 생래적으로 태에 감겨 나온 무엇이다.

'빗개' 사진 촬영 기간인 1년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온 그의 생애의 총합이 기어이 밀어낸 끄트머리의 1년이다. 오랫동안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었던 말을, 이제 자신의 화법인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다.
 
유별남이 채록한 '생존 빗개'의 인터뷰 중에 "토벌대든 무장대든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몰라 무서운 마음으로 숨어서 망을 봅니다. 종일 마을 뒷산에서 망보다 보면 지루해져 나도 모르게 주변 풀꽃도 건드려보고 돌담에 기대 하늘도 올려다봅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고향, 참 아름답구나...' 그러다 새가 날아오르는 작은 기척에도 소스라쳐 놀라지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낮게 걸린 30여 점의 '빗개' 사진과 4.3 관련 자료 및 영상들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는 4월 3일부터 22일까지 갤러리 류가헌 전시 1, 2관에서 열린다.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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