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사에서 볼 수 있는 메시지들 (자료사진=픽사베이)

[뉴스인] 고선윤 논설위원 = 마흔 노총각 동생이 장가를 간단다. “이즈모 대사(出雲大社)에서 작은 결혼식을 하니 참석하기 바란다”는 짧은 메시지에 반갑고 고마웠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5살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고, 신부도 일본사람이다 보니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신들을 모시는 신사(神社)에서의 결혼식은 반대해야 하는 일이라고 총대를 메었다. “우리 아들 대통령 나갈 때 지장이 있으니 신사는 안 된다.” 나도 아주 짧은 메시지를 보내면서 까칠한 시누이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인간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자각할 때, 인간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신’을 찾고 거기에 두 손을 모은다. 신도는 일본인의 자연숭배에서 비롯된 토착신앙이다.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로 여겨지는 야마토 시대 왕족은 신도의 의식을 통해서 정통성을 확보했다고 하는데, 이때의 신도란 특정 종교라기보다는 신을 의식하는 그런 모든 행위를 의미한 것 같다.

6세기 중엽 불교가 전래되고, 비로소 신도는 불교와 구분되는 특정종교로 인식되었다. 잠시  서로 대립되기도 했지만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신불습합(신도와 불교의 융합)을 이루고, 신도와 불교는 각각 일본 특유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에도시대 유교가 들어오자, 신도는 주자학의 영향으로 불교에서 벗어난 교의를 재정립했다.

메이지시대 천황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불운동, 신불분리가 추진되고 신사는 나라의 제사를 맡는 대일본제국의 국교, ‘국가신도’가 되었다. 천황의 조상신을 숭배하고 천황의 절대 신격화와 더불어 신도는 전국적으로 통일된 종교로 조직화되었다. 학교에서는 신도의 교의를 교육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1945년 12월 15일 연합국군최고사령관총사령부(GHQ)는 일본정부에 대한 각서 ‘신도지령’을 내렸다. 각서는 종교의 자유, 군국주의 배제, 국가신도 폐지 등 정교분리를 위한 것이다. GHQ는 신=천황이 다스리는 신의 가호를 받은 나라 ‘신도’, ‘성전(聖戰)’ 등의 사상이 신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1946년 쇼와천황의 인간선언도 이런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불교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이 있다면, 신도에는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다. 전국에 약 8만5000개의 신사가 있다고 하는데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치면 10만 개가 넘는다. 엄청난 수에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일본의 신을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神)’라고 표현하는 만큼 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어떤 신을 모시냐에 따라 소원을 들어주는 내용도 다르고 이미지도 다르다는 점이다.

신화 속의 신들 만이 아니다. 황실의, 씨족의 조상신 그리고 역사 속 실존인물도 신으로 만들어서 모시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신이 되어 모셔지고 있다.

동생이 결혼식의 자리로 지목한 이즈모 대사는 일본건국설화에 등장하는 오쿠니누시를 모시는 신사다. 오쿠니누시는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유명하다. 신사의 본전 앞 배전(拜殿)에서 2번의 박수를 치고 기둥에 매달린 두꺼운 밧줄을 당겨 종소리를 내는 것으로 본전에 모셔진 신에게 자신을 알린다. 그런데 이즈모 대사에서는 4번의 박수를 친다. 2번은 나를 위해서 2번은 미래의 나의 나의 짝꿍을 위해서란다. 

오쿠니누시는 형들과 함께 이나바에 사는 야가미히메에게 구혼을 하기 위해서 떠난 길, 어려움에 처한 토끼를 만나 구해준다. 토끼는 감사의 뜻으로, 공주가 형들의 청혼을 물리치고 오쿠니누시와 결혼을 하게끔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즈모 대사에는 토끼의 청동상 등 많은 조형물이 있다.

“내 사랑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도 하고, 여행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참 좋은 곳이다. 오쿠니누시를 모시는 신사는 이즈모 대사만이 아니라 전국에 여럿 있다. 교토의 지슈신사(地主神社)에는 ‘사랑을 점치는 돌’까지 있다. 눈을 감고 똑바로 걸어 이쪽 돌에서 저쪽 돌까지 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규슈의 다자이후텐만구는 헤이안 시대의 문인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다니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찾아가서 부적 하나 사오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이를 가지면 안산의 신을 모시는 신사를 찾을 것이며, 차를 사면 안전에 영험한 신사를, 사업을 시작하면 돈과 관련이 있는 신을 찾을 것이다.

사람이 갈구하는 저마다의 일들을, 그 일들을 들어주는 신들의 역량 역시 다르다고 보는 것은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말하는 종교와는 다르다. 신 역시 그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이미지를 만든다. 이것이 인간의 희로애락 속에서 어우러지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오래오래 신들의 자리를 지킨다.

인연을 맺어주는 영험의 신사가 있다면 인연을 끊어주는 데 영험한 신사도 있다. 나쁜 인연을 끊고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을 가지고 찾아가는 신사다. 각자의 소원을 적어서 달아둔 나무판에는 “담배와 인연을 끊고 싶다”는 애교스러운 글귀가 있는가 하면 “우리 남편 다시는 바람피우지 않기를”,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 등 남녀애정사와 관련된 글이 유독 많은데, “죽어버려”라는 글까지 있으니 섬뜩하다.

미래를 약속한 남자친구랑 “사상을 이루어주소서”라면서 룰루랄라 신사를 찾았던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숨을 쉬면서 이런 신사를 찾아 “헤어지게 해주세요”라면서 소원을 빈다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열정적 사랑의 유효기간이 900일이라고 하던가, 3년이라고 하던가.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한 생명을 탄생시켜서 최소한의 손이 필요한 시간만큼 허용된 ‘열정적 사랑의 시간’ 이것은 신이 만든 것일까 뇌의 과학일까. 여하튼 이런 사람 마음의 움직임까지 받아주는 그로데스크한 신사가 있다는 것은 일본의 독특한 신앙의 아량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많은 일본인들은 산 자의 의식은 신사에서, 죽은 자의 의식은 절에서 치른다. 그러니 특별한 종교를 의식하지 않고 정월 초하루는 신사에 참배하고, 조상을 추모하는 오본(お盆)에는 절을 찾는다. 출생 의식은 신사, 장례는 절, 결혼식은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성당. 이런 조합이 전혀 특별하지 않다.

일본은 원래 다신교인 신도의 나라다. 이런 신이건 저런 신이건 나에게 복을 주는 신이라면 어떤 신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사월 초파일도 크리스마스도 공휴일이 아니다. 더 많은 다양한 종교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동생은 결국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부터 했다. 이렇게 나는 못된 시누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아들 대통령 하려면 외삼촌이 일본신사에서 결혼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큰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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