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 허영훈 기자 = 지난해 10월 광주지법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다음 달 인권위는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병역법에 의해 형사처벌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와 반대로 지난 25일 대법원은 훈련소 입소 통지서를 받고도 종교적 신념으로 소집에 응하지 않아 기소된 신모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현행법상 처벌예외사유인 ‘정당한 사유’가 아님을 재판부가 거듭 확인한 것이다.

왜 재판부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일까? 각 재판부의 결정 근거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논하기에 앞서, 병역의무를 과연 다른 복무로 대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먼저 다룰 필요가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남북간의 무력대치상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결격사유나 법에서 인정한 사유를 제외하고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를 개인의 관점에서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되짚어보아야 한다.

병역의무 대상자 중 ‘가고 싶어서 가는’ 대상자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군에서 1년간 복무하는 것보다 산업체에서 2년간 근무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대상자들은 얼마나 있을까? 매번 국회 인사청문회 때 등장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 단골 이슈 중 하나가 후보자 아들의 ‘군 면제 사유’다. 왜 그럴까? 반대로 유명 연예인들이 당시 단기사병이나 연예병사가 아닌 현역, 특히 특전사나 해병대로 입대한 경우, 또는 외국국적을 포기하고 귀국해 현역으로 입대한 대상자들에게는 왜 박수를 보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덴마크, 독일, 체코 등과 같이 우리나라도 대체복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행복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한편, ‘헌법변천’ 이론을 가져와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인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헌법변천이란 헌법의 당해 조문은 존속하면서 의미와 내용만이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서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반영한 결과로 설명된다. 대표적 사례로 일본 자위대를 들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62년 헌법에서 지방의회를 구성하지 않고 관치행정으로 운용한 사례가 있다. 즉 과거와 달리 남북교류가 이어지고 있고 무기의 지능화 등 시대가 변했으니 병역의무에 대한 헌법상 해석도 달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헌법변천이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전제조건을 간과한 오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국민의 승인과 확신’이다.

우리나라가 처한 안보환경과 의무이행의 형평성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국민의 승인과 확신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만약 그 근거가 미약하다면 그러한 양심은 병역의무를 회피하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수단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대체복무에 관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복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며 다른 대상자들의 양해가 공감대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 다음 대체할 수 있는 복무 유형과 방법, 대상, 기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승인과 확신을 얻지 못하고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거나 대체복무를 도입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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