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4월 2일 부르키나파소 현지 찬영이네 집에서 열린 찬영이 생일파티에 한인 친구들이 함께 모였다. (사진=한아로)

[뉴스인] 한아로 = 내가 사는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현지인들이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사람들이 순하고 착하다. 부르키나파소에 도착해 가장 많이 들는 말은 “이곳은 환경적으로 척박하나 사람들은 정말 착하다”이다.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이름 자체도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Pays des hommes intègres)’라는 뜻이다.
 
이 나라의 수도 와가두구에는 한국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이 10명 정도 있다. 그 중에는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 아주 어린 시절 이곳에 온 아이들, 초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온 아이들,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 이사 온 아이들 등 다양하다. 시작점은 약간 다르나 이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살고 한 차로 같이 등하교하는 동네친구들이다.
 
처음 한인교회와 한글학교에서 만난 이곳 한인아이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는 서로 이야기 할 때 불어를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외적으로 한국에서 보던 청소년들과 같은 모습이나 말과 행동은 부르키나파소 현지인처럼 순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프랑스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한 프랑스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시험과 개인 과외 등으로 바쁜 것은 우리나라 청소년들과 비슷하지만, 이야기 주제나 행동은 마치 내가 7살 때 공부걱정 없이 동네를 누비며 다니던 모습이다. 틈만 나면 서로에게 망고나 돌을 던지면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옛날이 떠올라 흐뭇하기만 하다.

◇한글학교? 한탄학교!

한인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서를 가르쳐주기 위해 만들어진 한글학교에서 나는 토요일 아침마다 중학교 3학년 찬영이에게 역사, 한문, 국어를 가르친다. 불어와 부르키나파소 문화가 더 익숙하고 편한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공부는 낯선 것인가 보다.

수업을 시작하려 하면 찬영이는 언제나 머리가 아프다며 후드를 뒤집어쓰고 울먹인다. 그러면서 내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자기 어렸을 적 이야기나 일주일 동안 속상한 이야기를 속사포로 꺼낸다.

“옛날엔 주찬이형이랑 친해서 만날 놀러 다니고 그랬는데, 주찬이형이 고1 되더니 공부한다고 나랑 안 놀아줘서 서운해요. 우리 친구들 모두 옛날에는 호숫가로 놀러 가서 낚시하고 하늘에 있는 별보고 감동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러지 못해요, 다들 바빠서. 그리고 저는 게임 할 때 주찬이형이랑 같은 편을 하고 싶은데 민석이형이 떨어뜨려놔서 슬퍼요.”

사촌 형인 주찬이를 잘 따르고 좋아하는 찬영이는 주찬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기와 노는 시간이 줄었다며 항상 슬퍼한다. 찬영이는 슬프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나는 찬영이가 너무 귀여워 계속 웃음이 나왔다. 중학교 3학년! 우리나라였으면 한창 혼자 컴퓨터 게임에 빠져 나랑 안 놀아주는 누군가에게 서운하다는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는 나이 아닌가?

혹은 사촌형이 있어도 1년에 두세 번 보는 얼굴이라 어색해서 인사도 잘 하지 않고 각자 핸드폰 화면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사춘기 아닌가? 이 곳 아이들에게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는 해당사항이 없는 말인가 보다. 아니면 그 사춘기조차 이렇게 순수한 고민 속에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 부르키나파소, 그곳은 우리들이 잃어버린 순수

찬영이 친형인 희찬이는 이 곳 한인아이들 중 목청도, 덩치도 제일 큰 맏형이다. 차에서 현지인 기사와 불어와 부족어를 섞어가며 동네 아저씨마냥 떠드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첫인상은 한국인이라기보다는 부르키나파소 현지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점심 식사 후 간식으로 초콜릿이 나왔는데 개수가 부족하기에 내가 가진 초콜릿 2개 중 하나를 반납했다. 그걸 보더니 희찬이가 아무 말 없이 자기 초콜릿 하나를 내 앞에 슥 내민다. 그걸 본 민진이가 자기 초콜릿을 희찬이에게 건넸다. 그러자 희찬이는 “나 다이어트중이야. 너 먹어. 나 살찌면 책임질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며 초콜릿을 다시 민진이에게 돌려주었다.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희찬이는 점심으로 나온 비빔밥을 세 그릇째 먹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표현은 조금 투박하고 부끄러움에 솔직하지 않을지 몰라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나는 하루하루 이 나라의 더위와 향수병을 이겨내는 중이다. 이 아이들과 함께 할 때 나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자꾸 웃음이 난다.

이곳 한인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내가 살던 작은 아파트 단지가 떠오른다. 동네아이들과 우르르 모여서 뱀을 잡겠다고 뒷산으로 올라가거나 겨울엔 빙판에서 고무 쓰레기통 뚜껑을 타고 놀았던 그때가. 어쩌면 부르키나파소에서 자란 한인아이들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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