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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선물 보고서
고선윤 논설위원 | 승인 2015.08.07 15:41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1984년도부터 나의 여름은 ‘일본 나들이’ 기억으로 채워진다. 학생일 때는 서울로 유학 온 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도일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역시 휴가가 7월 말에서 8월 초 일주간인지라 이 시간을 어머니가 계시는 일본에서 보냈다. 결혼 후에도 친정 나들이는 역시 여름이었다. 여름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방학 때 움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유난히 습하고 뜨거운 도쿄의 여름, 태풍의 길목에서 요란을 떠는 일본의 여름을 나는 매년 찾아갔다. 일본 친구들은 견우와 직녀가 한해에 한번 만나는 칠석날을 들먹이면서 나를 ‘칠석날의 그녀’라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칠석날의 아줌마’라고 부른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매년 일본을 들락날락하는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80년대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밥솥을 부탁받았을 때는 난감했다. 상상하기 바란다. 청바지로 한껏 멋을 부린 여학생이 공항에서 커다란 밥솥을 들고 나오는 모양새를 말이다. 그 뿐인가. 당시 우리나라는 자국 공산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지간한 전자제품은 수입이 금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밥솥을 들고 공항을 통과하는 일은 참으로 민망스러운 짓이었다.

밥솥에 비하면 워커맨이나 카메라 같은 것은 크게 힘든 심부름이 아니었다. 어차피 한번 정도는 대형 전자상가를 들려서 개인적으로 욕심나는 시계도, 전자사전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 ‘우리는 언제나 일본처럼 말끔한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탁하는 물건도 달라졌다. 매번 턴테이블의 바늘을 부탁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이런 물건을 부탁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오디오 매장을 찾아서 고급스러운 음색을 아는 척 흉내 내는 일도 즐거웠다. 고서도 좋았다. 헌책방을 뒤지고 돌아다니면서 지적허영심을 채웠다. 반짝거리는 좋은 물건이 아니라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독특한 물건을 찾는 일은 국산품 애용만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들어주었다.

이후 우리의 물건들이 일본 것 못지않게 좋아지고, 일본을 가볍게 드나들게 되면서 일본에 가면 무엇을 사오라고 부탁받는 일이 없어졌다. 간혹 우메보시나 미소 같은 것을 부탁하는 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대형마트에 다 파는 것들이라 귀국 후 사다 드리는 것으로 짐을 덜었다.

올 여름도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친정나들이. 세상은 참 편리하다. SNS를 통해서 여름을 일본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알리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나의 행방을 알고 도쿄에서 차 한잔 하자는 친구, 어머니 안부는 묻는 친구 등등 다양하다.

   
 
환갑이 넘은 대선배님으로부터 ‘웃기는 부탁 하나 합시다’면서 사진을 담은 메시지를 받았다. 하마를 닮은 캐릭터 무민의 핸드폰 고리를 하나 사달라는 거다. 친구 중에 무민 캐릭터를 수집하는 이가 있는데 최근 우울해 하니 오지랖 넓게 이거 하나 선물하고 싶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딸아이는 “핀란드 작가의 캐릭터인데 왜 일본에서 찾지?”하면서도 이때가 기회라고 캐릭터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하기야 캐릭터 왕국에 그 유명한 무민이 없을까. 그러는 중 또 한 사람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중학생한테 선물하고 싶으니 짱구 캐릭터의 뭔가를 사다주기 바란다는 거다.

이래저래 수소문 끝에 우에노 역 앞에 캐릭터 전문 가게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과연 짱구는 있을까, 무민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찾았는데, 역시 기우였다. 지하1층에서 지상7층까지 각종 캐릭터가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짱구는 3층에 무민은 지하 1층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디즈니도 헬로 키티도 도라에몽도 호빵맨도 없는 게 없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고 잡히는 것마다 재밌다. 짱구는 유치원생이라서 그런지 캐릭터 상품이 다 유치하다. 도시락이니 연필이니 수건 정도다. 무민은 상당히 고급스럽다. 상당한 가격의 티스푼 세트도 있고 커피잔도 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할머니도 수집하는 캐릭터니 이런 것들이 있어 당연하겠다. 그나저나 다양한 크기의 무민 인형이 있는데, 아쉽게도 선배님이 지적한 18cm 크기의 같은 모양은 없다. 비슷한 것을 하나 골라 계산대에 올리는데, 딸아이가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 인형을 슬쩍 올리고 애교를 부린다. 그래 이 곳에 오면 누구나 동심이 되는 거지. 나도 못 이기는 척하면서 아기 팔뚝만한 애벌레 인형의 가격을 확인했다. 그리고 또 하나 확인 ‘made in china’.

선배님께서 사진으로 보내주신 것과 똑같은 무민 캐릭터를 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 남았는데, 귀국하기 바로 전날 도쿄역 지하에 캐릭터 타운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짐을 다 꾸리고 무민을 찾아 나섰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도쿄역을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온천지가 캐릭터 가게다. 무민 캐릭터만 파는 하나의 가게. 수요층이 있으니 영업을 하는 거겠지. 별 걱정을 다 하면서 이거저거 보는데 황홀하다. 그런데 여기도 선배님이 말씀하신 그것은 없다.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었으면 이 많은 무민 인형 중 똑같은 게 없을까.

2015년 여름 일본여행은 화젯거리도 아니다. 선물이라고 굳이 살 물건도 없다. 우리나라에 없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래. 중국에서 만들고 일본에서 파는 캐릭터 상품 말고는 뭐가 있을까. 군에 간 아들 선물은 도라에몽 매장에서 구입한 테니스용 손목 아대. 고양이방울이 달려 움직일 때마다 소리는 나겠지만 좋아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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