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미치코 황후가 걸친 사파이어밍크 숄. (사진 출처=amour918.blog.fc2.com/blog-entry-1343.html)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비싼 옷 두 개를 소개하겠다. 하나는 밍크코트다. 이제는 우리아이들도 키가 더는 자라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싶어 집안 옷장을 정리하다보니 이게 있었다. 20~30년 전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큰마음 먹고 마련한 것이다. 이것만 걸치면 엄마는 달라 보였다. 아니 달라 보이기 위해서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하고 온갖 멋을 부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그 위에 이것을 걸쳤다. 겨울날 특별한 만남, 특별한 장소에는 항상 이 모습이었다. 

어쩌다 이 코드가 우리 집 붙박이장에 머물게 되었다. 10년은 더 된 것 같다. 무거워서 못 입겠다면서 나더러 입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난들 애들 쫓아다니면서 입을 일은 없었고, 그러다 잊고 있었다. 먼지를 툴툴 틀고 거울 앞에서 걸쳐보니 엄마의 옛 모습이 슬쩍 지나간다. 여하튼 엄청난 크기의 뽕이 양어깨에 올라 이대로는 도저히 입고 나갈 수는 없는 옷이다.

없애기는 아깝고 두기엔 부담스러워서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수선하러 갔더니 이게 웬만한 겨울코트 하나 사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아니 두세 개는 사고도 남을 돈이다. 그래도 이 속에 엄마의 기억이 있어서 수선하기로 했다. 어깨 뽕을 없애고 길이를 줄이니 상당히 근사해졌다. 그런데 입고 갈 곳이 없다. 연말연시 동창회니 동호회니 좋은 자리들이 많았지만, 좋은 자리일수록 모피는 입고갈 수 없는 옷이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는 동물보호단체가 모피반대를 외치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퍼포먼스 등을 통해서 '모피반대'를 말한다. 매년 1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들이 모피 때문에 희생되고 있으며, 모피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모피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연예계 패셔니스타 이효리도 모피 대신 인조퍼를 입겠다고 선언하는 마당에 내가 어찌 모피를 고집할 수 있겠는가.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유명 연예인을 중심으로 모피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일본에서 모피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지금의 헤이세이 천황이 결혼하는 그해부터다. 당시 황태자의 결혼은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미치코 황후가 결혼을 앞두고 쇼와 천황께 인사가는 날 하얀 원피스에 밍크 숄을 걸치고 등장했다. 이 장면은 TV를 통해서 크게 방영되었고, 미치코 붐과 더불어 숄도 주목을 받았다.

이 시대는 일본이 경재성장의 호경기 속에서 일반 서민도 풍요로움을 실감하고 누릴 수 있는 때였다. 모피 역시 일부 권력자만의 사치품에서 일반 노동자층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미치코 황후의 사파이어밍크 숄은 야마오카 모피점(山岡毛皮店)에서 본인이 직접 고른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1868년에 창업한 이 가게는 황실의 어용상점으로 번성했고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가게로 성장했다. 그러니 이 시대의 어른들은 모피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이거 하나 정도는 마련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이다. 인터넷을 뒤지다 미치코 황후가 밍크 숄을 걸친 어린 날의 예쁜 사진이 있어서 들어가 봤더니 ‘미치코 황후가 모피를 걸치고 얼마나 많은 동물이 희생되었는가 생각해본다,’ ‘한사람의 행동이 동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결과가 되었다면 한사람의 행동이 동물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결과도 있을 것이다’는 글을 올린 블로그가 있다.  

일본에서 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성인의 날이다.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은 지방공공단체에 모여서 대대적 행사를 치른다. 여자들은 후리소데(振袖)라는 고가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모피 목도리를 두른다. 그래서 “기모노에 모피를 두르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성인이 되면 안 된다. 모피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성인의 날은 많은 모피를 볼 수 날이고, 한편 모피반대의 소리를 듣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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