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길홍 뉴시스헬스 논설실장 ghpark@korea.ac.kr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에 '보편주의 복지국가' 깃발 아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안하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그러나 기초연금이나 보육 등 복지 공약이 모두 파기되었고 동반 추진해야 할 경제민주화는 버림받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사회투자형 생활복지에서 후퇴하여 맞춤형 고용복지로 복지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는 유럽의 모델 중 눈길을 끌 만한 내용들을 선거용으로 대충 끼워 맞춘 대통령 당선용 정치적 구호라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야 모두 복지국가 건설을 공론화하고 있으나 관련 전문성의 수준은 검증이 요구된다. 특히 이상적인 형태로서 성장을 통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복지는 소비의 저변을 확대하여 경기부양에 이어서 성장에 이바지한다. 또한, 현재 부익부빈익빈의 심화에 의하여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신분제도가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는 부의 수준에 기반한 사회적 신분의 벽을 허물며 사회통합으로 가는 물꼬를 튼다.

복지를 위하여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따라서 세수 증대와 공공부문 부채 관리가 필요하다. 내수기반 확대와 규제완화는 기업의 고용ㆍ투자여건 확충의 토대가 되어 경제 활성화와 세수 증대에 이바지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중앙정부ㆍ지방정부 모두 재정절벽이다. 또한, 서민들의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로서 경기침체의 심화와 더불어 제1 금융권의 대출이 제2 금융권, 카드대출, 대부업체로 점점 악성화 되고 있다.그 결과 대부업체들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부 발표 경제지표와 서민 체감경기의 괴리는 삼성 착시현상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GDP 비중에서 2012년 현재 삼성이 23%, 현대차가 12%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대중소기업은 대부분 적자를 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경제 산업구조가 간비대증 환자로서 사회병리 증상으로 양극화가 심각하다.

그 결과 구매력이 없어서 내수 시장이 없다. 시장이 없으니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못 한다. 구매력 감소, 시장 위축, 기업 투자 감소, 실업률 증가, 소득 감소, 자산 디플레, 가계부채 부실화, 신용경색, 경기침체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경기침체로 세금이 안 걷혀서 재정의 구멍은 갈수록 커진다.

재정절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복지를 위하여 실현 가능한 방법론은 '양적 완화'뿐이다. '양적 완화'는 현재 GDP 세계 10위권 국가 중 실질적으로 대한민국만 안 한다.

그 대상은 은행이나 기업이 아니라 저소득층에 복지자금으로 직접 돈을 풀어야 한다. 다음 그린벨트와 국립공원 중 30년 이상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사유자산에 토지담보부채권 발행을 장기 저리로 허용한 후 매입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억울하게 침해받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이며 과거 파시즘적 잔재의 청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시지가가 주변시세보다 몇 배 낮아서 여전히 충분한 보상은 아니다. 자신이 당할 때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남이 당할 때도 같은 배려를 하는 선진적인 국민의식의 정착이 필요하다.

'양적 완화'를 통한 복지 또한 긍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를 수반한다. 첫째, 구매력 증가에 의한 내수부양과 시장 형성 그리고 이에 따른 성장이다. 구조적인 소비ㆍ투자ㆍ고용 부진에 대한 응급조치로서 민생 살리기와 경기부양을 위한 특단의 단기적 재정ㆍ통화 정책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9% 성장을 위하여 경제정책의 비중을 내수부양에 두고 있다. 그리고 '경기회복을 국민이 느낄 수 있게' 새일자리 45만 개 확충하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은 공공기관 정상화와 규제개혁, 창조경제, 내수기반 확대, 투자여건 확충 등 59개의 실행과제를 담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공표하였다. 하지만 기업 및 서비스 업종에 대한 규제 완화, 투자 활성화 대책, 저금리 기조 유지, 부동산 종합 대책 모두 불황과 저성장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88세대'라 부르는 것은 평균 월급이 세금 떼고 나면 88만원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된 원인은 한 마디로 장기 경제 불황으로 고용이 감소하고 사업을 해도 돈이 안 벌리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고용지표가 호전되었으며 내용은 소매업, 도매업의 고용 증가가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아직 딴나라 이야기다.

20대 재벌기업들이 현재 사상 최대의 현금을 비축하고도 투자와 고용이 저조한 것은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수요와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기업에 투자를 종용하여도 못 하는 것은 시장이 없어서 적자가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도 시장이 없으면 약발이 듣지 않는다. 기업은 시장이 있으면 투자하지 말래도 자기 돈으로 열심히 투자한다. 투자가 없으니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없으니 인건비가 싸진다. 그 결과가 88세대이다.

소비의 저변 확대는 경제심리와 투자심리가 회복되어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고용으로 나타날 때까지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양적 완화'는 잠재성장률을 상승시켜서 올해 4% 경제성장률 목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미국ㆍ유럽ㆍ일본은 경제 회복을 위하여 세계 역사상 최초로 '양적 완화'를 시도하여 현재 경기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둘째, 재정절벽 상황에서 복지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요구를 경감시킨다. 최상위 1%를 제외한 서민의 세금인상은 경기침체를 심화시킨다. '2ㆍ26 전ㆍ월세 세금과세'는 세수 증대를 위한 단세포적 정책으로서 이미 죽은 부동산 시장의 부활의 씨앗마저 고사시켰다. 선진국들은 재정절벽의 위기에서도 경기침체를 우려하여 증세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셋째, 원화 강세 추세의 둔화에 이은 수출 경쟁력 강화 및 수입과 해외여행의 감소를 유도한다. 현재 일본의 '양적 완화'로 엔화 평가절하와 원화 평가절상이 지속되어 수출 경쟁력과 채산성 악화에 이은 경제 위기의 심화가 우려되고 있다. 환시장 개입 수준의 미세조정으로는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현 상황을 호전시키는 유력한 대안이 '양적 완화'이다. 단지 수입 단가 상승에 의한 물가 상승은 수출기업 증세와 수입관세 인하 등 세율 조정으로 조절이 요구된다.

넷째, 세계경제의 대외적인 변수는 우리 정부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 공격적인 재정ㆍ통화ㆍ외환ㆍ금융 정책이 된다. 선진국의 '양적 완화' 출구전략으로 외국인 투자 자금이 국내에서 급속히 빠져나가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게 된다. 이때 우리나라의 '양적 완화'는 연착륙을 유도한다. '양적 완화'는 급격한 외국 자본 유입을 자제시키고 우리나라 경제의 내수 의존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내수의 튼튼한 기초체력은 선진국 '양적 완화' 출구전략의 영향을 최소화한다.

다섯째, 자산 디플레의 추세를 완화시킨다. 우리나라의 자산 디플레는 이제 한계까지 왔다. 더 진행되면 가계부채의 부실화와 함께 경제위기가 초래된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도 미국의 자산 디플레에 이은 부동산담보대출의 부실화로 촉발되었으며, 이로 인한 구매력 감소가 유럽경제위기를 초래하였다. 부동산 투기는 더 이상 issue가 아니다.

여섯째, 사회병리를 치유한다.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출산 보조금을 주어도 반응이 없다. 낳아서 키울 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고령화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나 경제적 삶의 질은 대책이 없다. 복지는 청년들에게 꿈과 활력과 가정을 주고 고령인구에게 안정적인 삶을 선물하며 양극화를 완화한다.

복지를 위한 ‘양적 완화’에는 인플레가 없다. 복지의 대상은 원조 저소득층과 경기 침체에 이은 부익부빈익빈의 심화와 더불어 중하층으로 전락한 중산층이다. 이들은 여유자금이 생기면 소비보다는 빚부터 갚을 것이다.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하여 정해진다. 가계부채가 상당부분 감소하기 전에는 소비의 여력이 증가하지 않고 따라서 인플레는 없다.

원화가 주요 기축통화(달러, 유로, 엔 등)가 아닌 상황에서 인플레 리스크는 존재한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저성장 리스크가 더 큰 위험 요소이다. 오히려 조절 가능한 약간의 인플레는 사업의욕을 고취시켜서 투자와 고용에 이어 성장을 담보하고 가계부채의 부담을 완화한다. 인플레와 실업률은 반비례한다. 고용 저하는 경기 회복을 저해한다. 또한 달러ㆍ엔화 약세로 급격히 유입된 초국적 자본이 형성하는 주식 및 자산의 거품보다는 조절이 용이하다.

세계 10위권의 기축통화를 가진 대한민국 정부도 이제 선진국 재정ㆍ통화 정책의 눈치를 보며 수동적으로 대응책을 고민하던 시기는 지났다. 대한민국의 세계 속의 위상은 이제 '양적 완화'를 포함한 자주적이고 선제적인 경제정책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할 역량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복지와 성장은 상호 상승효과로 연결된 유기체적 관계이다. 재정절벽에서는 '양적 완화'가 복지국가로 가는 구름다리이다. 그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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