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길홍 뉴시스헬스 논설실장 ghpark@korea.ac.kr

우리나라는 富 앞에만 서면 法이 한없이 작아지는 富治主義 국가이다.

세금은 국가를 움직이는 연료이다. 탈세는 나라 운영자금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기본 토대를 잠식하여 골격을 뒤흔드는 중범죄이다. 절도범의 최고 형량을 액수에 비례하여 선고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부자에게는 관대하고 빈자에게는 가혹하다.

대한민국 탈세의 원조로서 다양한 모델과 패러다임을 제시한 사람이 삼성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은 삼성 특검에서만 4조 5천억의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상속세 과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 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139일 만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또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이 경영권을 승계하며 수조원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16억 원의 증여세가 전부다.

우리나라 재벌과 슈퍼부자들이 세금 없이 '富'를 세습할 목적으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상속 방법이 고의로 평가절하 한 비상장 주식이나 주가 하락기를 이용하여 미성년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것이다. 이들은 상속세 탈세를 당연시하고 사회적으로도 묵인한다.

차명재산 보유 등 경제 비리 백화점 유병언의 잠적과 도주는 법보다 富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그의 측근들도 법보다 유병언의 富에 순종한다. 일단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서 움켜쥐고 있으면 존경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탈세, 배임, 횡령 등 경제사범은 사회 지도층일수록 엄격히 처벌한다. 미국의 경우 2004년 당시 재계 7위 규모를 자랑하던 에너지업체 '엔론'의 제프리 스킬링 회장이 15억 달러에 이르는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징역 24년 4월과 벌금 1800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18명의 전 사외이사 가운데 10명이 개인재산 1천300만 달러를 포함해 모두 1억6천800만 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배상하기로 하였다. 전 사외이사들 가운데는 필 그램 전 상원의원의 부인으로 한국계인 웬디 그램 전 선물거래위원장, 로버트 제딕 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장,,로버트 벨퍼 '벨코 오일 앤드 가스' 회장 등 소위 특권층이 포함돼 있었다.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은 공모 혐의가 드러나서 파산했다.

프랑스는 불법 탈세나 조세 회피가 국세청에 발각될 경우 40%의 가중한 추징금이 부가된다.

금융사기에 대하여는 훨씬 엄격한 처벌을 내린다. 숄람 와이스는 2000년 플로리다주 소재 보험회사에 대한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사기죄 혐의로 845년을 선고받고 펜실베이니아주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은 2009년 피라미드 사기로 150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손실 원금 175억 달러의 최대 4분의 3이 피해자에게 배상되었다.

반면 한국의 재벌들은 온갖 경제 범죄와 비리를 일삼고 편법으로 세금 안 내고 경영권을 승계하지만 총수 일가는 적법하게 처벌받지 않는다. 또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면서도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탈세, 회계조작, 배임, 횡령, 비자금조성, 불공정 거래, 독과점 담합, 주가 조작 등 재벌가 1, 2, 3세의 모습들, 선진국의 법ㆍ제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들의 인간 경시, 오만방자함은 도를 넘었다. SK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씨는 차를 매매하기 위해 찾아간 노조원을 야구 방망이로 실컷 두들겨 팬 후 치료비 조로 몇 푼 던져 주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온갖 정책적 특혜를 누린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미국의 부실담보대출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의 와중에서도, 서민 물가상승을 희생양으로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시행하여 재벌들이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해줬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4년 만에 삼성그룹은 21개의 계열사가 늘어났다. 재계 2위인 현대 자동차그룹은 36개에서 55개, SK그룹은 44개에서 79개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10대 재벌들의 계열사 수는 2007년 383개에서 630개로 무려 64%가 늘어났다.

재벌의 범죄와 비리가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탐욕을 수호하기 위하여 최전방에서 총알받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재벌 키즈가 정·관계와 사법 시스템의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재벌 덕분에 서민들이 먹고 산다.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1% 특권층이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나머지 국민을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재벌 기업들이 전쟁과 같은 세계시장 경쟁에서 승리하며 국가 브랜드의 위상을 높이고 국부를 창출하였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천민자본주의를 탈피하지 못하였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정책적 배려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앞세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근시안적 탐욕을 쫓아서 주로 골목상권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공격하였다. 두부, 오뎅, 순대, 떡볶이, 장류, 국수, 와인, 양말, 쇠못, 재생 타이어, 아스콘, 골판지, 상자 아연말, 리드와이어, 플러그부착 코드 제조업 등이다.

자영업자와 구멍가게 등 골목상권을 몰락시킨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신세계 그룹의 신세계푸드, 이마트, 이마트슈퍼 등과 롯데마트, 홈플러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 하는 보광 훼미리마트가 손꼽힌다. 그 결과 내수를 위한 소비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또한, 시장의 모든 영역을 자본의 힘으로 점령하며 독점적 지배자가 되면서 중소기업의 성장 모멘텀을 고사시키고 있다. 절대적 '갑'의 지위를 이용한 온갖 불공정거래와 정정당당한 M&A 대신 중소기업 핵심인력 스카우트를 통한 기술 빼가기, 그리고 딱 망하지 않을 만큼만 돈을 준다.

그 결과 중소ㆍ중견기업으로서 생산품목이 세계시장에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인 강소기업이 우리나라는 2013년 현재 26개에 불과하다. 독일은 1600여 개, 일본만 해도 220여 개다.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성장률이다. 경제성장률 증가는 부익부빈익빈의 심화를 의미한다. 건강한 경제 펀더멘틀을 위하여 대기업ㆍ중소기업 및 수출ㆍ내수의 동반성장이 요구된다.

독일이 전 세계적인 불황에도 세계 경제의 주역으로서 무역수지 흑자 세계 1위를 달리는 것은 중소기업들이 히든 챔피언으로서 세계시장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 세계 히든 챔피언의 합보다 많은 히든 챔피언 기업을 보유하며 중국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2012년 기업의 99.7%, 종업원 수의 60.8%가 중소기업이며, 기업 전체 매출의 38%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였다.

핀란드 경제는 수 년 전까지 글로벌 대기업인 노키아에 의존하였다. 휴대폰 시장 세계 부동의 1위,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노키아 1개 기업이 담당하였다. 핀란드 청년들의 꿈은 노키아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2007년 이후 노키아가 스마트폰 경쟁에서 삼성ㆍ애플에 밀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15년 만에 첫 영업 적자를 기록한 노키아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급전직하 하였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핀란드 경제가 위태롭다고 예단했다. 하지만 탄탄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은 노키아 몰락의 영향을 이미 거의 극복하였다.

일부 보수언론은 앞장서서 재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도록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법치주의 확립, 노사관계 등 특혜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만수 전 국가경쟁력위원회 위원장은 "국내 상속세율이 너무 높아 국내 자본의 해외도피가 일어난다."며 상속세 세율인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슈퍼부자들이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초법적 특혜와 대접을 받으며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현재 富治主義 국가 대한민국뿐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안다.

법치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가 확립된 선진국에서는 국내 재벌들의 재산 증식의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다. 탈세와 비자금 조성이 중범죄로 처벌받고 독과점과 담합이 적발되면 기업이 망할 정도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 보유세, 자본이득세가 한국보다 훨씬 높다.

또한 삼성처럼 직원이 수십만 명인 기업이 '무노조 경영'을 지속할 수 있는 선진국은 없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지분으로 전 계열사에 지배적 경영권을 행사하고 그룹의 자산을 재벌 일가의 개인재산처럼 유용ㆍ횡령하면서도 온갖 불법ㆍ탈법을 동원하여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국내 재벌이 해외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부실한 법치주의로 인하여 기업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저렴한 생산비용이나 현지 시장 접근성 때문이다. 아니면 자금 세탁이나 탈세를 위해 해외 계열사를 설립하거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기 위함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법 앞에 평등한 법치주의 사회에서 富가 성장할 때 건강한 경제 펀더멘틀 위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기업 공개 후 기업은 개인재산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다. 국가와 국민의 지원으로 성장한다. 상속세를 제대로 내면 부의 세습은 가능해도 경영권 세습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영권을 세습하려면 기업을 공개하지 않으면 된다. 상속ㆍ증여세 탈세에 의한 편법 경영권 승계는 사기로서 중범죄이다.

경제사범의 형량이 너무 낮아서 동일한 범죄가 지속된다. 재벌 규제가 아니라 범법행위를 처벌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소중한 것은 기업 총수일가가 아니라 기업이다.

또한, 경영권 세습은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기업의 미래는 CEO의 능력에 좌우된다. 능력 있는 CEO는 총수 일가라는 극히 한정된 pool에서 선임하는 것보다 전문경영인이 더욱 바람직할 수 있다. 전문경영인 기업문화가 자리 잡으면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으로의 문어발식 확장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의 존경받는 기업에서는 '최대 주주는 CEO'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규모 세계 십위 권 국가가 국가 브랜드 가치는 27위이다. 富를 위한 불법ㆍ탈법ㆍ편법이 사회전반에 만연하며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가를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값비싸게 치렀다. 이제 '황금 만능주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천민자본주의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선진적인 제도와 시민정신으로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성장시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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