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헬스 신태식 논설위원.

이제 곧 해외동포 800만 명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구한말 하와이의 사탕수수밭 노동인력이 부족하자 최초로 115명이 하와이와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 또는 철도 건설 노동자로 이주하기 시작해 1935년대에는 러시아에서 추진한 변방개척정책에 따라 약 17만 명의 동포가 굶주림과 일제탄압을 피해 연해주로 민족 대이동을 했다.

이들이 2년 뒤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게 되면서 까레이스키(고려인)의 한 많은 인생이 시작됐으며, 한반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간도로, 미국으로, 중국으로 서글픈 이주를 했던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픈 역사다.

어디 그뿐인가. 6.25 남북전쟁을 겪으며 우리는 이산가족의 고통과 최악의 배고픔으로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됐다.

그 이후에도 가난과 이념의 갈등을 뒤로 하고 새로운 꿈을 위해 선진국으로 향한 우리민족의 해외 이주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해외동포현황의 전체 규모에 대해 2011년 외교부는 일본이 91만2655명, 중국이 233만6771명, 미국이 243만2643명, 캐나다가 17만0121명, 러시아가 55만7732명, 호주가 5만9940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는 일제탄압과 남북전쟁의 불행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이들의 피눈물 나는 일생을 기억해야 한다.

3.1운동 이후 일어난 간도참변, 죽음의 땅인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하게 된 고려인,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인에 의해 나라 잃은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사건 등은 아직도 우리를 눈물짓게 만든다.

아마도 우리의 해외 이주역사는 마치 노예로서 처참한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이 이집트의 박해에서 탈출해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날 이스라엘을 건설한 유대민족과 견줄 만큼 고난과 눈물과 한으로 얼룩져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 미국의 워싱턴 주 상원부의장인 신호범(미국명 폴 신)박사를 만났다.

1935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고아로 자라다가 6.25를 겪었고, 서울역 앞에서 거지생활을 하던 그는 미군부대 트럭이 지나갈 때면 "기브 미 껌"을 외치며 따라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한 미군장교가 내민 손을 덥석 잡고 무작정 올라탄 트럭은 군부대로 향했고, 그곳에서 하우스보이가 된 신호범은 성실성을 인정받게 됐다.

평소 그를 눈여겨 본 폴 대위는 한글도 모르는 18세 나이의 청년을 아들로 입양하고 미국으로 부르게 된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부산 앞바다를 출발하는 배의 갑판위에서 청년 신호범은 한국을 향해 침을 뱉으며 다시는 배고픔과 절망뿐인 이 땅에 오지 않겠다고 외쳤다 한다.

그랬던 그가 미국에서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드디어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1998년 워싱턴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지금은 상원 부의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학자로서 정상에 올랐지만 항상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에 회의를 느껴왔다 한다.

어느 날 문득 '그래도 나는 한국인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늦은 나이에 새로 한글을 배우고 조국을 다시 찾게 됐다.

그는 2006년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신호범 박사는 워싱턴 주의 학교에서 한국어를 선택과목으로 배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며, 미국 50개 주마다 한국인 정치인을 1명씩 배출한다는 취지로 한국인 2세 정치인 후원회를 설립하고 지원하고 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한국인으로 보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향후 20년 내에 재미한국인 출신이 미국의 대통령에 선출될 수 있다는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 미국의 젊은 한국인 정치지망생에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한국계 아이를 입양하고, KIDS(Korean Identity Development Society)를 설립해 입양인이 한국과 태권도 등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과 늦춰지고 있는 결혼적령기로 인해 심각한 인구감소와 급격한 고령화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적 자원마저 고갈되고 있는 형편을 뻔히 보면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자원도 없고 전쟁과 이념갈등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오로지 우수한 인적 자원만으로 세계 10대 강국을 이루어 낸 나라, 바로 한국이 아니던가.

지금 정부에서 글로벌 정책과 창조경제를 외치는 이유는 수많은 해외동포라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인구의 10%에 이르는 760여만 명의 해외동포는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폐허 속에서 이루어 낸 경제발전을 터 잡아 이제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했던 해외 입양자와 이민자들에게 양 손을 벌려 따듯하게 보듬어야 한다.

그들에게 조국이 한국임을 각인시키고 한국을 위해 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중국의 조선족은 스스로 자신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한중 축구경기가 있을 때면 언제나 중국을 응원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까레이스키(고려인)들이 조국인 한국을 그리워하며 눈물과 애환으로 노래하던 볼셰비키의 조선극장은 불이 꺼진지 오래고, 이주 2, 3세대들은 한국말을 잊었다.

그나마 잔치 때나 간간이 만드는 할머니의 부침개며 떡이며 국수, 나물무침, 돼지고기찌개 등을 먹을 때라야 자신이 고려인 출신이라는 사실을 공허하게 느낄 뿐이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미국이민 1세대들은 가난한 조국이 싫었다. 자신의 아이들은 빨리 미국에 동화되기를 바랐고 이민 2, 3세대에게 모국어는 필요치 않았다.

이제 어느덧 이민 4세 5세로 이어지면서 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먼 조상님의 나라로만 기억될 것이다.

재일동포는 어떤가? 한일관계가 얼어붙을 때마다 우익세력의 난동에 휘말릴까봐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하고 있으며, 이렇게 불안하게 사느니 자식의 앞날을 위해 차라리 일본으로 귀화를 선택하자는 동포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인임을 끝까지 지키며 운동했던 어느 유도 선수가 결국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인으로 경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무엇이 3.0인가? 이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이중국적 허용도 확대하고, 해외동포의 비자발급도 쉽게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태초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웅대한 역사와 세계인이 감탄하는 고유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

한국이 그들의 조국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세계를 향해 더욱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 될 것이며 한편으론 슬픈 역사 속의 해외동포를 위로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유성에서 열린 신호범 박사의 만찬회에서 우리들의 박수 속에 무대 위에 오른 그는 간단한 인사 끝에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이제 자신은 미국의 정치생활을 마감하고 자신처럼 가난과 절망으로 한국을 떠나야 했던 해외 입양인과 이주 동포를 위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글 등 조국의 자랑스러운 얼을 알리는 일에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우리를 향해 갑자기 큰절을 했다.

침을 뱉으며 떠난 조국, 배고픔과 굴욕만을 안겨준 조국이지만 신호범 박사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을 조국과 해외동포를 위해 서둘러 남기고 싶은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무대를 내려오는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신태식 논설위원>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