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5만4911명이 '관심'을 클릭하고 1800여 개 댓글이 달리는 등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글이 있다. 이 글의 필자는 40대 아들을 둔 아버지이고 사연의 주인공은 아들 이봉구(41·가명)다.

사연은 '(내 아들은) 초중고 전체 수석은 물론 국내 최고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K대학원까지 다닌 인재…'라고 시작된다. 이어 아버지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카투사)에 간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조현증(정신분열증)이란 병에 걸려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 사연을 애끓는 부정으로 써내려 갔다.

아버지 이모(69)씨가 지난 28일 뉴시스 취재 과정에서 제시한 각종 자료(보훈심사 심의의결서 등)에 따르면 아들 이씨는 지난 1993년 9월 육군에 입대해 최전방 DMZ의 유엔사 경비대대인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로 배치 받아 무기고를 지키는 사병으로 근무했다. 당시 부대는 총기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였고 엄한 군기 속에 미군과의 차별 대우에 따른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당시 이 일병은 무기고 경비를 서며 긴장과 공포감을 느꼈을뿐 아니라 고참들의 구타와 폭언에 시달려 고통을 호소했다. 무엇보다 함께 근무하는 미군 흑인병사가 엉덩이를 만지는 등 동성애 성추행을 시도해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정신분열 상태가 됐고 국군병원에서 3개월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 군 복무가 불가능하다는 군 병원의 결정에 따라 강제전역됐다.

아버지는 그동안 주한미군, 보훈처를 상대로 이런 문제를 제기했지만 대부분 거부나 기각을 당했다. 행정소송의 경우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2007년 '국가유공자비해당결정처분취소'의 소에서 '원고(이씨)가 군복무를 하던 중 이 사건 상이(傷痍)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 사건 상이의 주된 발생 원인인 미국 흑인병사로부터 받은 성추행 사실에 관한 구체적인 경위 등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로…'라고 판결한 바 있다. 군복무 중 발병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 원인은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다.

24시간 밀폐된 공간(무기고)에서 미군 병사와 단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또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매우 내성적이어서 성추행 당한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 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버지가 동석한 상태에서 간단한 인터뷰만 가능한 당사자 이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본부중대의 미군 대위에게 흑인 병사가 자신을 성적으로 괴롭혔고 선임들의 구타와 폭언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건 비웃음뿐이었고 항의는 묵살됐다"고 말했다.

그 후 군복무 478일째 되는 날인 1995년 1월 이씨는 구토를 동반한 이명(耳鳴·귀울림) 현상을 호소하며 누군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한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이미 2주 전부터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진료 결과 환각, 피해망상, 불안 등을 수반한 정신질환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입원 후 87일만인 1995년4월11일 결국 정신질환에 따른 의가사 전역이 결정됐다.

당시 임상기록에 따르면 환자(이씨)가 환각과 망상은 부정하나 계속 잔존하는 것으로 보이고 호전은 되고 있으며 당사자는 의병전역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며 '많이 편해졌다' '자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수차례 호소했지만 군의관의 의견에 따라 정신질환으로 인해 더 이상 군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의무조사(강제전역을 위한)를 상신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 사건은 이미 20년 가까이 지나 당시 1년7개월간 이씨의 군 복무 시절을 재연하는 것도 불가능한데다 J.S.A 보관 자료에 접근하는 것 역시 까다로워 이씨의 아버지는 진상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한미군측에도 여러 차례 이 문제를 거론해 봤지만 '카투사'에 대해선 관할책임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씨 아버지가 유엔군 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 한미연합사 사령관에 보낸 1995년 5월12일자 민원은 당시 모두 '주한미군 배상사무소'로 이첩됐고, 이 후 돌아온 회신에는 '불행히도 귀하의 배상청구는 한미행정협정이나 유엔군 규정 혹은 미합중국 법률에 의거 배상될 수 없다'는 내용이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 기재돼 있었다.

'주한 미군 배상사무소'에서 온 서신을 보면 '미군 부대에 배속되는 카투사는 그 신분이 미군이 아니고 대한민국 육군이며, 아들에 대한 ‘불명예제대’에 대해 손해를 감소시키기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군에서 귀하의 아들을 제대시켰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군 계통을 통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단호히 설명하고 있다.

이씨의 제대 후 조현증 증상은 심각했다고 한다. 제대 직후 약 3년간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고개를 흔들어 대는 '틱 장애'를 겪었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 음식을 모두 먹어 치우는 '폭식증' 증상도 있었다. 행인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등 심각한 상태가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면서 지금은 공격적 성향 등은 사라진 상태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피해자 이씨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는 무기고에서 근무했고 그곳에서 흑인병사와 같이 근무했었고 24시간을 쉬프트(교대)한다. 저는 외톨이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후임병들도 나를 싫어했다. 흑인만 보면 돌아(피해서)가고 싶었고…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다. 00 병원에 가서 흑인이 나를 괴롭힌다고, 죽이려는 것 같다고 제 증상을 얘기했더니 나를 국군수도병원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녹취록의 일부분으로 일부는 이해가 안되는 얘기가 있으나 흑인 미군에 대한 반감과 두려움은 뚜렷이 드러냈다.

현재 이씨가 앓고 있는 '조현증'은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에 시작돼 만성적 경과를 거치며 정신적 혼란을 유발하는 뇌질환이다. 이것은 비교적 흔한 병이어서 100 명 중 1명꼴로 병에 걸린다.

전문가들은 정신분열증 자체는 유전되지 않지만 쉽게 병에 걸릴 수 있는 소인이 유전될 수 있고 여기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 발병한다고 말한다. 정신분열증의 발병은 서서히 진행되며 주된 증상은 환청, 망상, 이상 행동, 횡설수설 등이며 감정이 메마르고 말수가 적어지거나 흥미나 의욕이 떨어져 대인관계가 사라지는 등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애타는 아버지의 주장은 이렇다. "그렇게 훌륭했던 내 아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했다가 발생한 사고다. 그 곳에서 자그마치 1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또 미군 흑인병사로부터 동성애 성희롱도 당하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왕따)도 당했다고 하지 않는가…이를 정부(보훈처)가 전투 중에 입은 상해가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또 "내 나이 69세다. 아내는 암 투병 중이고 나 또한 이 일로 인해 심근경색을 앓아 병원 신세를 지는 상황이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남은 삶의 목표다. 그것 때문에 계속 기각을 당하는데도 이의를 제기하면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고 있고 또 상식적으로 유공자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처는 "'자해행위'를 국가유공자의 제외사유로 규정하던 국가유공자법이 개정·시행돼 다음 달부터 군복무 중 폭언이나 폭행, 가혹행위를 못 견뎌 자살한 장병들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집단 따돌림 등 군 생활 중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 군 장병에 대해 국가 책임을 폭넓게 인정해 국가 유공자로 봐야한다는 판결을 최초로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공군에 입대해 생활하던 중 1999년 자살한 장모(당시 21세)씨의 유족이 대구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처분취소' 상고심에서 원고가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을 돌려보냈다.

지난해 대법원은 "군인이 군 복무 중 자살로 인해 사망한 경우 국가유공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교육 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한다"며 "인과관계가 인정이 되는데도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유 의지가 배제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며 판결 요지를 밝혔다.

이 판결은 집단 따돌림과 직무수행에 사이에 얼마나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판결 근거가 집중된다. 꼭 자살의 경우에만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주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이에 따르면 이씨의 경우 미군의 성희롱과 선·후임들의 집단 따돌림은 물론 24시간 밀폐된 무기고에서의 직무수행이 정신질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만 할 수 있다면 국가유공자에 해당될 수 있다.

법무법인 바른 법률의 김종수 변호사는 "큰 기준에서는 의미가 있는데 국가유공자 사건의 경우에는 내용들이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건의 경우 크게 두 가지로 이씨가 군 복무와 관련해서 '조현증'이 발병했다는 객관적인 증거(인우보증 등)와 그 병으로 일반 생활이 불가하다는 장애 등급이 확실히 입증돼야 한다. 법원의 판결을 보면 흑인병사의 성추행은 입증에 어려움도 있고 또 그 추행의 정도가 심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취지로 보인다. 따라서 그 당시 근무했던 객관적인 상황들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 적극적으로 보강해야 된다"고 설명한다.

한편 누리꾼 5만5000명이 이 사연을 추천하고 1800여 개의 댓글을 다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이디 [주**] '부모의 심정은 똑같을 것인데 부디 힘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조**] '마음 함께 합니다. 힘내세요' [Choi**] '현실은 인정하시고 이겨내셔야 합니다 힘내세요' [Lee**]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힘내세요' [Suh**] '아버지의 큰 사랑이 느껴집니다…힘내세요' [김**] '우리는 부모이기에 미약하고 아픈가 봅니다…승리하세요' [지**] '두분 다 힘내세요~ 등 수많은 응원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오늘도 이봉구씨의 아버지(69)는 아들을 횡단보도에 세워 놓고 불안한 시선으로 아들이 그 길을 잘 건너는지 숨어서 지켜보며 사회적응 훈련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내 몸을 태워 아들을 다시 정상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며 하늘을 쳐다 보는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 조현증이란= 세계 인구의 1%가 겪고 있는 정신분열증으로 비현실감을 느끼고, 환청이나 망상처럼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을 경험하거나 이유 없이 대인관계를 피해 점점 외톨이가 되는 등 증상이 나타난다. 지난 2010년 의료계에서는 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분열의학회 등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정신분열증'의 명칭을 '조현증'으로 바꿨다.

■ '시사 할(喝)'은 = 앞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잘못된 제도나 문화 등을 비판하고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신설한 기획이다. 할(喝)이란 주로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말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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