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헬스】김도환 기자 = 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서 환자 A씨의 가족들은 A씨가 치료도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경제적인 이유를 들며 A씨의 퇴원을 요구했지만 병원장을 비롯한 주치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2007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병원을 상대로 퇴원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의 결정권 보다는 헌법에 보장된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통해 치료행위를 멈추는 것이 곧 사망으로 연결된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먼저 법적 대리인의 결정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결코 동일 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일심동체’가 아님은 모든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어느 누구라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법적 대리인의 결정과 자기 결정권과는 구분된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대리인의 결정이 아닌 환자 본인의 자기결정권보다 우선하는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정말 있을까? 이러한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의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는지 자신의 밖에 있는지를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말이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생명 주인이 자신이 믿는 신이라고 말 할 것이고 자연주의자들은 생명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철저한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 주인은 자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즉 생명의 주인은 신이며, 자연이며, 본인으로 각기 자신의 생각마다 다르게 표현할 것이다.

헌법에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헌법은 무었을 근거로 그런 법칙을 확신하고 있는가? ‘절대적’이란 단어는 ‘무엇보다도 중요함’, 혹은 ‘어떤 기준보다 최우선시하는 기준’을 의미할 때 사용한다.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있다면 그 법칙을 만든 존재가 있거나 절대적 법칙 스스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은 절대적 법칙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헌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절대적 존재자가 만든 것일까? 그래서 헌법은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현대를 다원화시대라고 한다. 50억의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 자신의 최선의 삶을 각기 다르게 구성한다. 종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각도 각기 다르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윤리관의 차이가 생기고 그로인해 전쟁도 불사한다. 인구 4천만의 한국도 도시와 농촌의 의식이 다르고 20대와 60대의 의식이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헌법에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있다며 모두 그 법칙에 따르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헌법은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기위해 구성원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약속이지 사회 구성원들의 ‘삶 전체’의 주재자일 수는 없다. 생명의 가치는 헌법에 의하여 주어지는 가치가 아니라 개인의 종교와 주관적이며 신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에는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생명 보존의 법칙’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최선이란 고정 불변의 절대적인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각자의 생각에 따른 ‘주관적 최고의 선’을 의미할 것이다.

헌법이 생명에 대한 절대적 주재자가 아닌 것처럼 의사도 생명의 절대적 주재자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의사에게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한이 주어질 수는 없다. 의사는 절대자의 대리인이 아니다. 의사는 의학이라는 학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며 한계가 있는 의학의 실천자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실수도 하며 지금은 옳다고 생각하는 치료방법을 내일은 틀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의학이 발달하면 의사들은 치료 방법을 바꿀 수밖에 없는 ‘절대적 치료자가 아닌 보통 인간들보다 좀 더 나은 치료자’일 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 문제는 본인의 신앙과 이성적 신념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지 헌법이나 의사들에 의해서 결정될 문제는 더욱 아니다. 사회적 죄로 인한 처벌과 관계없는 삶과 죽음의 결정은 헌법보다 더 상위의 문제이며 동시에 의학적 기술로도 결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의 오류로 생각되는 3가지 점이 있다. 하나는 ‘근거가 모호한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을 확신한다는 것이고 그로인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적 생명 보존 법칙의 실행자를 의사로 보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자기 결정권과 보호자의 결정권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 생명의 절대적 지배자가 누구인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인하여 근거도 없는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살릴 수 있다는 확신도 없이, 무한정 들어가는 치료비를 헌법이 지불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되는 고통을 ‘막연히’ 붙들고 있으라고 강요할 주체가 누가될 수 있는가? 재판부가 모든 책임을 질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 어떤 절대적 존재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고통을 받아들이라는 약속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책임지지 않는 고통을 강요할 자격이 있는가?

필자는 생명을 가볍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책임자를 함부로 정해서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헌법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의사에게 어떤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부담을 지우는 것은 매우 어리석어 보인다. 의학은 최선을 다하는 학문일 뿐 절대자의 능력을 가진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A환자의 경우에 보호자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의 생각을 충분이 반영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살펴보아야지, 헌법에 절대적 생명 보존 법칙을 무조건 부여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 관행은 죽음에 다다랐다고 판단할 경우, 설사 그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죽음에 도달한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여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아도 국가의 헌법이 삶과 죽음을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육체적 생명을 좌지우지한 폭력적 국가에서도 양심의 선택만은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헌법에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을 부여하기보다는 기존의 관행을 따르는 것이 덜 위험하지 않을까? 삶과 죽음과 관련하여 함부로 ‘절대적 생명 보존의 법칙’이라는 ‘절대적 경계선’을 그어 버리려는 생각이 기존의 관행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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