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그린 낙산공원 한양도성 작품
할아버지가 그린 낙산공원 한양도성 작품

[뉴스인] 윤홍섭 시니어 기자 =서울 한양도성은 1396년 태조임금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수도 한양(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내사산 (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연결하여 쌓은 약 18.2km의 성곽이다. 

낙산공원 정상
낙산공원 정상
낙산공원 정상
낙산공원 정상

한양도성은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문화유산으로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되었다. 

손자와 두 번째로 찾은 한양도성길 낙산공원은 흥인지문(동대문)에서 낙산을 지나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낙산구간 2.1km 도심 속에서 서울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산책길이다.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흥인지문 공원 언덕길을 따라 3분 정도 오르면  어린 손자도 걷기에 편하게 잘 조성된 성곽길을 만나게 된다.  특히 성곽 바로 옆으로 난 길을 걷다 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환상적인 서울의 동북쪽 전경을 볼 수 있다.

흥인지문 (동대문)을 내려다 보는 손자
흥인지문 (동대문)을 내려다 보는 손자

낙산공원으로 가는 산책길은 비교적 완전한 모습의 성곽을 볼 수 있으며 완만하고 한적한 도심 속숲길로 20분 정도 가면 낙산공원, 이곳에는 낙산 전시관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특히 낙산공원까지 이어지는 성곽길은 걷기에도 편해 어린 손자와 걷기에 부담이 없다.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손자와 걸으면서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손자와 걸으면서

산책로 주변에 마련되어 있는 낙산정을 지나 벤치에 앉아 할아버지는 고려말 정치적
외적으로 혼란 스러운 정국을 바로잡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태조 임금은 인재 등용과 농민복지, 조세개혁, 국방력 강화 등 리더십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임금이라며  손자에게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리더가 되라고 했다.
낙산공원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온 손자는 한양도성 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낙산공원에 있는낙산정
낙산공원에 있는낙산정

이곳 낙산공원은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향을 간동안 왕비였던 정순왕후가 매일 이곳에 올라 영월 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생을 마쳤다는 슬픈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훼손된 것을 복원하여 2002년 공원
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공원길 곳곳에는 아기 자기한 볼거리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으며 한양도성과 푸른 숲이 잘 어우러저 아름
다운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서울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특히 해 질 무렵 나지막한 산자락 정상 낙산정에서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워 젊은이들이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 (동대문)
보물 제1호 흥인지문 (동대문)

흥인지문 (동대문)
서울의 4대 문중 하나인 흥인지문(보물 제1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흔히 동대문이라고 부른다. 태조임금 7년 (1398년)에 완성했다가 단종임금
6년(1453년)에 고쳐 지은문이다.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지각 건물이다. 또한 바깥쪽으로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도성의 8개 성문중 유일하게 반원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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